사진,예술로 가는 길
1.창조적 사진을 위하여
1.1 사진은 말이다.
사진은
첫째, 새로운 사진, 처음보는 사진
둘째, 보아서 보람이 있는 사진,감동을 주는 사진
셋째, 여러 사람이 늘 찍던 소재라도, 그 소재에서 남다른 의미를 새로이 찾아낸 사진,새로은 깨달음을 주는 사진 ...이런 사진이라야 한다.
1.2 예술은 창작이다.
남들이 찍은 소재를 나도 찍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새로운 해석, 새로운 깨달음, 곧 개성적인 안목이다.
사물을 남과 다른 각도에서 볼 줄 알고, 남과 다른 의미로 해석해내는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사물이 새롭게 보인다.
새롭게 보여야 새롭게 찍힌다.
흔한 얘기이지만, 사진은 보이는 대로 찍힌다. 보이지 않으면 찍히지 않는 것이 사진이다.
때문에 작가의 눈에 새롭게 보여야 하고, 새롭게 보려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개성적인 눈이 개성적인 사진을 만들어 준다.
고정관념 깨기란 결국 개성적인 관찰력 키우기의 다른 말이다.
사진은 기술이 아니다. 사진은 작가의 생각이요, 느낌이다.
1.3 좋은 사진, 새로운 사진
사진은 결코 발로 찍는 예술이 아니다.
사진은 새로운 소재를 찾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은 어떤 신기한 사물이나 사건을 수집하는 작업이 아니다.
소재보다는 새로운 의식, 새로운 감각이 필요하다.
신기한 소재를 찾기보다 흔한 소재라도 거기서 새로운 의미를 찾거나 새로운 느낌으로 재인식시켜 주는 그런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사진을 발견의 예술이라 했거니와, 참된 발견이란 의미의 발견을 말하는 것이지 소재의 발견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는 점이다.사진을 발로 찍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찍는 작업이라 한 말이 그래서이다.
예술로서의 사진이란 사물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느낌, 새로운 감동을 받을 수 있게 해 주는 사진을 가르킨다.
결국 사진은 사물의 의미 찾기 작업,해석작업,의미 부여 작업인 것이다.
사물이 가진 의미를 찾으려 애쓰기 보다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느껴졌는지를 찾아야 한다.
내가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지 사물이 가진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다.
그 사물이 가진 의미, 더구나 객관적 의미,원초적인 의미를 찾으려 들면 사진이 올바로 찍히지 않는다. 그런 것은 없기 때문이다. 없는 것을 찾으면 헛수고만 한다.
사물의 의미라는 것은 모두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에 따라 제 생각대로 붙인 것이 사물의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니 한 가지 의미로 고정되어 있을 수가 없다.
사물의 그러한 의미는 사진가 각자가 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찍는 것, 그것이 의미 찾기이고, 의미 부여이고, 그것이 사진이다.
1.4 만남의 예술
무엇을 찍을까 걱정하지 말고, 무엇을 찍고 싶은가 그것부터 찾아라
무엇을 찍을까 이전에 사물이 어떻게 보이는가를 먼저 찾아내야 한다.
어떤 사물이 새로운 의미로 눈에 띌 때까지 마음을 열어 놓고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막연히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고민해야 한다. 늘 생각하면서 찾아야 한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 보면 문득 어느 날 그 사물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새로이 보일 때가 있다.
2.사진예술의 기본 성격
2.1 사진의 정답을 찾으라
사진은 아름다운 어떤 것, 어떤 볼 만한 사건을 찍은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진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렇게 외형적인 어떤 것이 결코 아니다. 예술로서의 사진은 깊은 내면적 성찰에서 출발한다.
그러면 사진이란 어떤 예술인가?
한마디로 해서, 사진은 자연과 인생에 대한 자기 발언이다. 예술이라는 것이 원래 인생과 자연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한 것이다.
예술로서의 사진 역시 이처럼 자연과 인생에 대한 자기 생각과 느낌을 영상을 통해 표현하는 것이다.
사진은 복합적인 인생과 자연을 대상으로 거기에서 깨달은 내 생각, 내 느낌을 찍는 것, 이것이 사진이다,
무엇보다도 신기한 것, 재미있는 것, 아름다운 것을 찍는 것이 사진이 아니라는 인식이 첫번?로 갖춰져야 한다.진지하게 우리의 삶과 환경을 둘러보는 것이 사진이라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사진을 해야 한다.
2.2 사진은 시간예술
사진이 찍는 것은 시간이라는 것, 시간을 찍을 수밖에 없는 것,따라서 시간을 찍기 위해 사진은 쓰여져야 한다는 것, 이것이 사진 메커니즘으로, 이것이 사진 인식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사진의 정체성,사진의 독자성이 여기에 있다. 다른 어떤 예술도 시간을 잡아 내지 못한다. 사진만이 시간을 잡아내 시각화할 수 있다.
기록적 가치는 사진만의 고유한 가치이다. 사진의 예술성도 이 기록적 가치위에 서 있을 때 더 빛이 난다.
2.3 시간성을 벗어난 사진
구도보다 중요한 것이 셔터 찬스이다.
사진의 내용을 결정지어 주는 것은 셔터찬스이지 구도가 아닌 것이다.
구도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진 화면의 정리뿐이다.
1970년대 후반에 당시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사진 큐레이터이자 평론가 존 샤코프스키가 1960년대 이후의 미국 현대사진을 크게 두가지로 분류한 전시가 상당한 화재를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거울과 창(Mirror and Windows)이라는 이름의 전시였는데, '거울'이란 '자기표현'으로서의 사진을 가르키고, '창'이란 '현실 기록'으로서의 사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후 이 분류법이 사진을 가르는 대표적인 분류법으로 자리를 잡다시피 하였다.
존재론적 사진은 존재를 통해 결국은 자기 내면을 표현하는 사진이다.
그 존재가 작가에게 주는 내면적 울림(생각이나 느낌)을 외형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요, 그렇기 때문에 '거울'에 해당하는 사진이 되는 것이다.
한편, 창의 사진도 표면적인 사건만을 찍은 사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창으로 내다본 바깥 풍경을 통해 자기 생각, 자기 느낌을 표현한 것이 '창의 사진'의 본질이다 . 생활기록이라고 했거니와 그 생활을 기록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결론이 있을 것이다, 그 이유나 결론은 주관적인 수 밖에 없고, 주관적이라면 결국 자기 표현에서 먼 것이 아니다.
보다 확실히 말해서 다큐멘터리 사진도 결국은 자기 표현의 사진이다.
세상에 대한 또는 인간이나 그들의 삶에 대한 자기 생각, 자기 느낌을 표현한 것, 이것이 다큐멘터리 사진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규멘터리 사진,기록성의 사진도 예술일 수가 있는 것이다.
결국 거울이든 창이든 드러난 상황이 하나는 인간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내면이지만, 주관적이라는 점에서 둘은 닮았고, 표현이라는 점에서 공통하며, 예술이라는 점에서 같은 것이다.
거울의 사진 : 자기표현으로서의 사진, 존재론적 사진, 작가의 내면적 울림을 외형적으로 표현해 낸 사진
창의 사진 : 현실기록으로서의 사진, 창으로 내다본 바깥 풍경을 통해 자기 생각,느낌을 표현한 사진
2.4 빛의 예술
사진은 빛의 예술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마음에 드는 대상을 보면 그 대상 자체에만 몰두해서 일단 셔터부터 누르고 본다. 대상에 취해 다른 것에 신경을 별로 쓰지 않는다.
대상에 몰두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지금 찍은 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특히 빛에 대한 고려를 충분히 했는가 하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실제로 필자는 계롱산 부근에서 나무 뿌리를 찍기 위해 햇빛이 그 뿌리에 닿을 때까지 한시간 반 동안 부근에서 다를 소재들을 찍으며 기다린 적도 있었다.
3.직접적 조언
3.1 무엇을 찍을 것이가.
가) 주제와 소재
사실 사진을 찍을 때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을 찍을 것이가 하는 문제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자 시절에는 그저 눈에 띄는 대로, 닥치는 대로 찍는다.
가르치는 사람도 초보자 시절에는 이것저것 다 찍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할 것을 권하기도 한다.아무것이나 찍으면 되는데, 다만 어떻게 찍을 것인가 하는 것만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구도를 가르키고 황금분할을 가르친다.
그것이 사진을 잘 찍는 길이라고 생각하여 그렇게 가르치고 배우는데, 결론부터 말해서 이는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찍을 것이가 하는 문제이다. 어떻게 찍어야 하는가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무엇을 찍을 것이가" 하면 곧장 어떤 사물을 찍을 것이가 하는 문제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보다 더 앞서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어떤 내용의 사진을 찍을 것이가 하는 문제이다.
내용이 결정되어야 그 내용을 형태화하기 위해 어떤 사물을 찍을 것이가 하는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곧,주제가 결정되어야 그주제에 알맞은 소재를 찾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얘기다.
'무엇을 찍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피사체의 문제가 아니라 사진의 핵을 결정하는 문제, 사진가의 중심된 생각과 느낌, 곧 주제를 정하는 문제이다.
나) 주제는 어떻게 정하는가
주제를 정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늘 생각하고 느끼는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주제로 삼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이 사회가 모순되었다고 생각하고 그 사회적 모순에 늘 울분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주제로 삼아야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에 안기는 것이 좋은 사람은 자연을 주제로 삼아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좋다, 자연에 대한 내 생각이나 느낌을 주제로 삼으라는 뜻이다.
둘째, 위에서 예를 들었듯이 꽃이나 바위 등 눈에 띄는 사물부터 찍기 시작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소재부터 찍어 나가라는 것이다, 그후 그 찍혀진 사진들을 살펴보면서 그 안에서 주제를 찾아내는 방법이다.대체적으로 어떤 대상(소재)에 흥미를 느껴 찍기 시작하다가 거기에 차츰 생각이 붙고 느낌이 드러나 그런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되는데, 필자가 권하려는 것도 이 방법이다.
주제를 정하려면 또는 찾으려면 우선 한 소재를 많이 찍어야 한다. 꽃이면 꽃, 나무면 나무, 여자면 여자 등 하나의 소재를 정해 많이 찍은 뒤, 그 여러 장의 사진을 한데 모아 놓고 그 속에세 내면적으로 공통된 사진들을 골라내야 한다. 처음에는 내가 왜 꽃을 찍으려 했을까 잘 모른 채 그냥 찍어 왔지만, 그들 사진을 한데 모아 놓고 모년 그 속에서 '아하, 내가 꽃에서 찾고자 한 생각,꽃에서 얻은 느낌이 이런 것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또는 이들 꽃을 통해 이런 것을 표현해 보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것을 그 사진의 주제로 삼는 것이다.
그런것을 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냐,그런 것도 모르니 문제지,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형태상으로 공통되는 것도 나중에 보면 서로 다른 것 같고 찾아 내기도 어려운데,'내면적'으로 공통된 것을 찾으라니 이것은 도저히 할 수가 없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초보자들이 대부분 이럴 것이다. 그래서 선생이 필요하다. 이들 사진에 공통되는 요소는 어떤 것인가, 이들 사진에 일관되게 흐르는 내면적 정서는 어떤 것인가를 선생에게 물어야 하고 선생은 그것을 찾아 주어야 한다.
배우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이나 주의할 것은 기술을 배우려 들거나 기술을 지도하는 데에 치중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사진 기술보다는 사진의 소재나 주제를 잡아 주고 이끌어 주는 일이 더 중요하다.기술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혼자서 주제를 찾아내거나 정하기 위해서는 사물을 보는 훈련을 먼저 해야 한다.
사물을 보는 훈련이라고 해서 자세히 관찰하는 훈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세히 관찰해야 할 경우도 있겠지만, 자세한 관찰보다 중요한 것은 통찰력이다.
사물을 보는 순간 '아'하고 새로이 느껴지고 새로이 보이는 눈을 기르는 훈련이 더 중요하다.
통찰력이란 사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말한다. 사물을 보는 순간 그 사물의 의미나 느낌이 순간적으로 깨달아지는 그런 능력을 가르킨다. 꽃으면 꽃, 나무면 나무가 남과 달리 보이고 달리 느껴지는 자기만의 눈이 자세한 관찰보다 중요하다. 이런 통찰력 없이는 백날 찍어야 헛일이다, 많은 아무추어 작가들의 작품이 평가를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 여기에 있다. 밤낮 보던 사진이 되풀이되는 까닭은 이런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탓이다.
이때 주의할 것이 상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상식을 벗어나야 한다고 해서 무슨 기상천외한 것을 찾으라는 것은 아니다. 몇 번씩 거론된 것이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내용을 주제로 삼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꽃을 보면서 단순히 아름답다 하면 그것은 평범한 상식이다.
그런 사진 찍어 보았자 밤낮 그게 그 사진이 되고 만다.
아름답되, 그 아름다움이 늘 보던 아름다움, 남들이 다 알고 있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남들은 미처 느끼고 깨닫지 못한 아름다움, 내가 발견해낸 아름다음일 때 그 아름다움은 찍을 만한 가치가 있는 아름다움이 된다.
그런 것을 찾아 찍어야 창조적인 사진이 되는 것이다.
성적인 느낌이든 성스러운 느낌이든, 여하튼 꽃에서 남다른 면을 찾아내는 일이 사진 찍기보다 앞서야 한다.
길에서나, 집안에서나, 눈에 띄는 모든 사물을 보며 그 사물을 어떻게 찍어야 사진이 될까를 관찰하고 생각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그렇게 찾아낸 것을 찍어야 한다.이런 훈련을 되풀이하다 보면 어느 날 드디어 사물이 새로운 면을 드러내고, 새로운 느낌이 느껴진다.
드디어 눈이 뜨인 것이다. 그때부터는 덜컥 찍어도 된다.
이것 역시 일종의 깨달음이다. 산속의 스님만이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다.
사진가, 아니 모든 예술가가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작업을 하는 것이다, 깨달음 없이는 사진도 작품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창조적 사진으로 가는 길목에서 첫번째로 부딪치는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사물을 보는 눈,통찰력을 길러야 한다.
각자의 눈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자연을 파악하는 통찰력을 우선 길러야 한다.
이것없이 창조적 사진은 찍히지 않는다.
이것은 훈련을 통해서만 얻어진다. 천성적으로 그런 소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소질을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으면 훈련을 통해 얻을 수밖에 없다.
이 훈련에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시간을 가지고 남의 좋은 사진 많이 보고, 많이 찍고, 많이 생각하면 그러한 능력은 저절로 붙는다.
다) 삼다의 법칙
이런 훈련의 하나로 '삼다의 원칙'을 권하고자 한다.
좋은 사진은 찍으려면 많이 보고, 많이 찍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
첫째 다독
어디에서 본 듯하면 찍지 말라
어디에서 본 듯한 것을 그대로 찍어 버릇하면 그것이 바로 모방의 시작이요, 사진가로서 죽음으로 접어드는 길이다. 되든 안되는 제멋대로 찍기시작해야 내것이 만들어 진다, 제멋대로 해야 '내 사진'이 나온다. 남들은 미처 생각도 못한 사진을 찍을 수가 있다. 한 사람의 개성적인 작가로 설 수 있는 길이 이것이다.
좋은 사진을 많이 봄으로써 자기도 모르게 사진을 보는 눈이 높아지고, 그 눈높이에 따라 내 사진의 질도 저절로 향상된다. 자기가 찍은 사진이 늘 보던 좋은 작품 수준에 이르지 못하게 되면 그런 사진이 무의미함을 느끼게 되어 다시 시도하게 되고, 이런 되풀이를 통해 사진의 수준은 저절로 높아지게 된다.
때문에 좋은 사진을 골라서 보아야 한다. 명작이라고 알려진 작품, 능력이 있는 작가라고 알려진 사진가들의 작품을 많이 보아야 한다.
필자가 앞에서 카르티에-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의 사진을 말한 바 있지만, 그런 사진이 왜 걸작인지 이해가 잘 안 될 경우, 자꾸 보아야 한다.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보는 가운에 저절로 그 사진의 아름다움이 보이고 깊은 맛이 느껴진다.
둘째, 다작
필자가 학생들을 가르칠 때 늘 하는 말은 '일단 눈에 띄었으면 물고늘어져라'라는 것이다. 적당히 물러서면 적당한 사진밖에 나오지 않는다. 물고늘어져 끝장을 보아야 남들이 감동하고 감탄하는 사진을 찍을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현장이 사라지면 만사가 끝인 것이다.
창조적인 사진으로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은 한두 가지 소재로 좁혀서 많이 찍는 길이다. 창조적이든 아니든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한 우물을 판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소재가 따로 있어 그런 것들만을 주로 찍는다-김기찬의 골목안 풍경-
셋째, 다상량
많이 생각해야 한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생각하라는 것이며, 어떻게 생각하라는 것인지 답답한 사람은 많을 것이다.
간단히 생각하면 된다. 우선 무엇을 찍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풍경이냐 인물이냐,그것도 좁혀서 나무냐 바위냐, 또는 어린이냐 어른이냐 등 어떤 대상에 렌즈를 향해야 할까를 생각해 보고 결정해야 한다.
다음으로 어떻게 찍어야 하는가를 열심히 생각해야 하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여러분의 몫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찍고 싶은 대상을 어떻게 해야 내가 본대로, 느낀 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하라는 것으로, 이는 전적으로 찍는 사람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다상량과 관련해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좋은 사진을 볼 때에도 생각을 많이 해 가면서 보라는 것이다, 왜 이런 것을 찍었을까, 왜 이렇게 찍었을까, 인화는 왜 이렇게 했을까 등등
라) 주제는 왜 필요한가?
사진은 말이다. 실은 사진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이 다 '말'이다.
말만 말이 아니라 '표현된 모든 것'은 말인 것이다,
대개는 살아가면서 생각나는 것이나 느껴지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 내가 꼭 찍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두어 가지 주제를 늘 머릿속에 넣고 다닐 것을 권한다. 한 가지만 찍으면 더 효과적일 수도 있으나 한 가지 주제만을 찍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복잡한 생활 속에서 어느 한 가지에만 몰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경우 두세 가지 이상의 주제가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마) 어떤 주제라야 하는가
A) 내가 찾아낸 주제
어떤 주제가 사람을 감동시키고 영원히 살아남는 사진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 하는 그것이 문제이다. 이 역시 말로 하면 간단하다. 앞서 누누이 말했듯 새로운 주제를 찾아내야 한다고. 노인들의 외로움, 아이들의 천진난만함 따위 진부한 것도 주제는 주제지만 그런 주제는 신물이 나도록 보아 왔으니 이러한 주제를 피해 새로운 주제를 설정해야 한다고..
이렇게 새로운 주제를 찾아야 한다고 말은 쉽게 하지만 필자 역시, 아니 모든 사진가, 모든 예술가들이 고민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 세상에 안 다룬 주제, 찍지 않은 소재가 아직도 남아 있을 리가 없으니 전적으로 새로운 주제를 찾으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방법은 한가지이다.
그것이 새로운 것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내가 찾아낸 것, 내 생각, 내 느낌에 따라 내가 발견한 주제가 있다면 그것을 파고드는 것이다. 그것이 이미 발표된 것이고, 외국에서는 이미 여러 번 다루어진 주제라 해도 그것은 어쩔 수가 없다.모방이나 표절은 남의 것을 보고 흉내를 낼 경우에 해당되는 내 스스로 생각해 낸 주제가 남들과 비슷하다고 해서 모방이나 표절은 아니다.
사실상 요즘 발표되고 있는 작품들 중 완전히 독창적인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번 다루어진 주제라도 작가의 눈으로 재구성해서 개성적으로 영상화한 것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B)말로 표현할 수 없는 주제
주제라고 해서 심각하고 무거운 것만이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가벼운 농담도 할 수 있고, 욕지거리도 할 수 있다. ??로는 장난도 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메시지가 무엇이든 확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기 생각으로 자기 얘기를 할 때 이러한 확실한 메시지가 나온다.
또 한가지는 말로는 할 수 없는 주제가 있다는 점이다.
말로는 도저히 표현, 전달이 되지 않는 메시지가 이 세상에는 한없이 많다. 사진은 그렇게 말로는 전달이 되지 않는 메시지,시각으로라야 비로소 표현 가능하고 전달이 되는 그런 주제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로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해서 어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적을 주제로 삼으라는 것은 아니다, 관념적인 것은 사진보다는 언어의 세계이다. 언어로나 설명이 가능한 것이 관념인 것이다.
한가지 더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예술은 발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변화할 뿐이다.패러다임, 곧 세상을 보는 관점이나 표현방법의 변화가 예술의 역사다.
이 세상에 알려진 수많은 걸작, 명작들은 거의 다 주제가 새로운 것이라기 보다는 관점이나 접근방법이 새롭거나 개성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새로운 주제를 찾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이 새로운 접근방법, 새로운 해석이다.
새로운 주제도 좋지만 각자의 패러다임, 곧 각자의 의식이나 개성에 따라 자기식의 방법으로 접근할 때 더 현실적이고 흥미로운 작품이 생산된다. 이처럼 이미 여러번 다루어진 주제라도 새로운 면으로 다시 접근해서 새로운 해석을 내린 것, 이것이 많은 걸작들의 실체이다.
C) 주제와 개성
내 마음으로 보고 느끼고, 내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한 것을 찍어야 내 사진이지, 남의 생각, 남의 말 따라 찍은 것은 비록 내가 찍었어도 그것은 남의 사진이다. 개성이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소위 명작, 걸작이라고 알려진 많은 작품들은 '새롭다'기 보다는 '개성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주제는 물론이요, 접근방법도 이미 수많은 사진가들에 의해 개발되고 실험되어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는 것은 새로운 주제 찾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 각자의 개성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래서 '제멋대로 하라'고 한 것이다.남의 눈치를 보면 절대로 안된다.
사회적 양심이나 도덕조차도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벗어 던져 버릴 수 있어야 한다.
D) 개성의 표현
개성은 드러낸다고 하기보다 저절로 드러난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개성은 의지를 가지고 드로내려고 노력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게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도 그렇다. 내 개성을 생각해서 거기에 맞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저절로 터져 나오는 게 우리들의 말이다.
그처럼 사진을 찍다 보면 저절로 개성이 들어나지, 개성을 억지로 집어넣는 것이 아니다.
바) 어떤 소재를 찍을 것이가
A) 주제에 알맞은 소재
결국 우리가 찾아내야 할 소재는 새로운 것도 좋고 남의 눈을 끄는 것도 좋지만, 주제에 알맞은소재, 그것도 그 소재가 아니면 그 주제가 살 수 없을 뻔했다 싶은 확실한 소재라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러면 역시 많이 다니는 수밖에 없다, 어떤 것이 가장 알맞은 소재인지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런 것이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사진을 발로 찍는' 이유는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주제를 살리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소재를 찾으려면 많이 다니는 수 밖에 없다.
B) 일단 찍어 놓을 것
그렇게 다니면서 눈에 띄면 일단 찍어 놓아야 한다. 그러는 동안에 이것이다 하는것이 나온다. 그것은 작가 스스로가 알 수 있다.찍을 때부터 이것은 물건이 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든 경험을 대개 해보았을 것이다.
C) 한가지로 집중할 것
한가지 소재를 골라 그것을 집중적으로 찍으라는 것이다.
나무면 나무, 돌이면 돌 어느 한 가지 소재를 정한 뒤 그것만을 집중적으로 찍어야 한다. 다른 것에는 당분간 눈을 돌리지 않는 것이 좋다.
눈에 띄는 소재를 찍으라는 것은 내 관심을 끄는 것, 공연히 찍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찍되, 무엇보다도 지속적으로 찍을 수 있을 것을 찾으라는 뜻이다.
생명력이 있는 사진이란 여러 번을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고, 두고 볼수록 새로운 맛이 나는 사진을 가르킨다.
D) 지속적으로 찍을 것
한가지 소재만을 집중적으로 찍다 보면 얼마 안 가서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비슷한 사진만 계속 찍히는 탓이다. 그때부터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자각이 오게 되고, 그에 따라 고민이 시작된다. 새로운 것은 보이지 않고 늘 비슷한 것만 찍히는데, 어떻게 해야 이 슬럼프에서 벗어내 새로운 사진을 찍을 수 있을지 고민이 안 될수가 없다. 자칫하면 이것으로 그만 사진에 싫증을 느껴 중도에 포기하거나, 상당 기간 슬럼프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수도 있다.
이럴때 중요한 것은 비슷한 사진이라도 계속해서 찍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찍다보면 어느 날 깨달음처럼 문득 새로운 경지가 열린다.
역도선수가 새로운 기록을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할까 생각해 보라, 늘지 않는 기록 때문에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그러다가 새로운 결심으로 덤벼들어 문득 새로운 무게를 들게 되면, 다음부터 그 무게는 쉽게 들게 된다.
사진도 이와 같다. 새로운 사진을 찍 위한 유일한 방법은 끈기 있는 촬영뿐이다.
안 보여도 쉬지 말고 찍어야 한다. 그러는 가운데 새로운 사진은 찍힌다.
E) 솔직할 것
남의 눈이 두렵거나, 자기내면을 솔직히 들어내지 못하는 사람은 사진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예술은 솔직해야 한다. 그리고 자유로워야 한다. 모든 것으로 부터, 나로 부터도 자유로울 때 예술은 꽃을 피운다.
3-2. 어떻게 찍을 것이가
가) 자유롭게 찍자
초보자든 경험자든 여러분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여러분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것이다. 자기 생각,자기 느낌에 따라 전적으로 자유롭게 사진을 해야 한다. 만일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것뿐이다. 그 외의 어떤 것도 원칙은 아니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길에 첫 발자국을 찍으려고 친구들과 앞서거니뒤서거니 다투던 어렸을 적의 기억을 대개 가지고 있을 것이다. 예술은 창작이라고 했거니와, 창작이란 바로 눈 내리 길에 첫 발자국 찍기이다. 그때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발자국을 찍어야 할지 몰라 쩔쩔맨 적이 있었던가? 사진을 어떻게 찍을지 모르겠다는 사람은 어떻게 발자국을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과 같다.
예술가는 남의 팬이 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을 팬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예술가란 길을 만드는 사람, 길을 여는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 미신을 타파하자
사진을 찍을 때 이렇게 해야 한다 또는 이래서는 안된다는 이상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필자는 이를 '사진 미신' 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미신'인 것은 잘못된 지식이요, 사진하는 사람을 어지럽히는 그릇된 믿음이기 때문이다. (예; 기념사진은 예술사진이 될 수없다,플레시를 사용한 사진은 안된다, 사람이 오른편을 보고 있으면 오른쪽 화면에 여유를 주어야 답답하지 않다, 어디엔가 한군데는 핀트가 맞아야 한다, 컬러 사진을 오전 10시 이전이나 오후 4시 이후에는 필터로 색 보정을 해야한다, 황금분할선상에 주된 피사체를 넣어야 화면에 안정감이 생기고,,, 등이 사진 미신이다)
모든 예술이 다 그렇지만, 사진 역시 틀에 넣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틀을 짜는 순간,틀에 갇히는 순간,예술을 생명을 잃는다. 예술은 전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 틀은 그 자유의 입에 물리는 가장 큰 재갈이다.
작품은 전적으로 자유이다. 자유로운 생각과 발상, 자유로운 접근 방법과 표현, 자유로운 내용과 형식 등. 이 글을 읽는 지금부터라도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각,감정을 마음대로 풀어놓아 자유롭게 해주기 바란다.
기념사진은 사진의 원점에 서는 사진이다, 사진의 필요성, 사진발명의 가장 중요한 동기가 바로 이 기념사진에 있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기념사진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바로 '역사 만들기' 작업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시시한 작품사진, 예술사진은 많지만 시시한 기념사진은 단 한 장도 없다는 사실을 깊이 새겨 두기 바란다.
다) 기계의 눈으로 보라
풍경을 찍을 경우, 눈으로 아름답다고 느껴서 그대로 찍어서는 별볼일없는 사진이 되기 쉽다. 눈으로 볼 때의 아름다움은 단순히 눈으로만 본 아름다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곳에 이르기까지 한참을 걷던 끝에 도달해서 그 아름다운 풍경을 만났다면 그것은 그 때의 마음이 함께 그 경치를 본 것이다. 마음만이 아니라 시원하게 불어온 바람이 또한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어 더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그뿐 아니라 그 경치를 본 사람들과의 공감이 확산되면서 그 아름다움은 더 돋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진으로 인화되어 나올 때, 당시의 그 느낌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사진은 단순히 시각만으로 사물을 보기 때문이다.
요컨데 우리 눈으로 본 풍경을 본 그대로 찍는 것이 본 대로, 느낀대로 찍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우리는 모든 신체적 감각으로 보고 느끼지만, 사진으로는 시각에만 의존한다는 것, 따라서 이를 극복하려면 범위를 좁게 잡아야 한다는 것, 이것이 요점이다.
라) 설명을 피하라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또 하나 중요한 원인은 이것이 무엇이다 하고 설명하는 식의 사진에 머물러 있다는 데에 있다.
설명은 예술적 창조행위가 아니다. 창조란 새로 만들어내는 것을 가르키는 것이고, 설명은 이미 만들어진 것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말하는 것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예술이 설명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외형적인 데에 그칠 수밖에 없다. 내면적인 생각이나 느낌은 설명할 도리가 없다.
사진은, 예술은 대상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지, 외형적인 형태를 보여주거나 알려 주는 작업이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 풍경을 예술작품으로 만들 수 있을까?
첫째로, 앞에서 누누히 말했듯 그 풍경에 대한 작가 나름의 생각이나 느낌을 찾아내 이를 형상화 해야 하고
둘째로, 그러한 외형적 설명(이것이 아름다운 풍경이요 하는 식의)을 피해야 한다.표현이란 대상에서 보고 느낀 자기의 생각이나 느낌을 보는 사람들 역시 자기와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게 해주기 위한 작업이다. 외형이 아니라 내면을, 작가가 가진 생각이나 느낌을 그 생각과 느낌 그대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작업인 것이다.
장미를 찍을 경우, 망원렌즈로 클로즈업해서 찍은 이슬 머금은 장미를 우리는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그렇게 흔한 장미를 평범하게 보여주는 사진은 이것이 장미입니다, 이렇게 아름답습니다 하는 것 이상의 내용이 담겨 있지 못한, 외형적 설명에 그친 사진이다.
그 장미를 통해서 남다른 아름다움을 느끼에 해주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저절로 감탄이 나오네 하는 것이 "표현"인 것이다.
승무를 찍으려면 그 승무의 맛을 잘 알고, 춤추는 이의 개성과 멋을 알아서 이 대목이야말로 승무의 가장 아름다운 대목이다 또는 이 장면이야말로 이 사람이 추는 승무의 결정적 순간이다,하고 느껴진 장면을 찍어야지, 그냥 춤추는 모습만 보여주는 사진은 의미가 없다.
그 춤의 참된 아름다움을 보여주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야, 승무야말로 우리 전통 춤의 정수로구나,라든가 승무에서 번뇌를 거쳐 승화된 인간 정신을 느꼈다든가 하는 그런 느낌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 '표현'인 것이다.
표현이 요구되는 것은 표현을 통해 사물이 형상화하기 때문이다. 형상화라는 말은 추상적인 사상이나 감점을 구체화시키는 작업,보이지 않는 것을 마치 눈으로 보듯 느끼게 해주는 작업이다. 문학을 비롯한 다른 예술의 경우에 해당하는 말로, 사진의 경우에는 형상을 가진 사물을 통해 형상이 없는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필자가 학교에서 작품 지도를 할 때의 일인데, 장가를 든 학생이 자기 아내를 찍어 온 사진에 온통 아내의 외형적인 모습-아침에 일어나 세수하는 모습,화장하는 모습 , 밥 차리는 모습 등-만 찍혀 있었다.그가 자기 아내를 찍었을 때는 사랑스러워서 찍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나타난 것은 내 아내는 이러이러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는 것 이상의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았던 것이다. 아내가 사람스러우면 사랑스러운 면을 찾아 그것을 찍어야 한다.이를테면 남편을 바라보는 눈길에 정이 담뿍 담겨 있다거나 표정이나 못짓에 은밀한 무엇이 느껴진다든기 그런 모습이 보여야 하는 것이다.그런 모습이 찍히려면 실제로 아내가 그런 표정이나 못짓을 지을 때 찍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아내의 모습이 정말로 사랑스러울 때, 그런 것이 내 눈에 보이고 느껴질 때 찍어야 한다는 점이다.
내 아내는 이렇게 사랑스럽다고 나서서 말을 하지 않아도, 보는 사람이 저절로 느낄 수 있게 찍어야 한다. 그럴 때 표현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것이며, 그런 사진이 성공적인 사진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고 느꼈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무엇을 찍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할 때 초점이 맞아야 하고 노출도 맞아야 하지, 그 사물에서 느낀 느낌이라든가 인상을 표현할 때 초점이나 노출은 작가가 알아서 할 일에 지나지 않는다.
예술로서의 사진은 사물을 재현해내는 작업이 아니라 그 사물을 통해 작가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작업인 것이다.
때로 이렇게 찍으면 남들이 알아볼 수 있을까 염려스러워 남들이 알아보기 쉽도록 설명적으로 찍는 일이 있다.
그러나 공연한 걱정 말고, 남이야 알어보든 말든 내가 보고 느낀 대로 찍어야 한다.
그러면 볼 줄 아는 사람은 다 알아보고 느낀다. 내가 확실히 보거나 느끼지 못한 채 막연히 찍으면, 남들도 알아보지 못한다. 확실히 보거나 느끼고 찍어야 한다.
그러면 틀림없이 알아본다. 이것이 사진의 불가사의함이다.
사람들중에는 아직도 사진이 객관적인 매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퍽 많다. 형태만 보면 객관적일 수 있지만,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객관성은 한 오리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떤 대상을 찍을 것인가 하는 것부터가 주관적인 선택 행위이다. 특히 그 대상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로 들어가면 이제부터는 전적으로 주관적인 행위일 수밖에 없다. 렌즈의 선택, 셔터 스피드나 조리새 값의 결정, 대상과의 거리 정하기 등 객관적으로는 전혀 찍을 수 없는 것이 사진이다.
마) 한 발 더
필자가 강의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하는 권고가 있다. '한 발 더 들어가라'는 것이다.
전문적으로 사진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발 더 들어가 찍은 뒤, 다시 한 발 더 들어가고, 다시 한 발 더 들어가 이제 더 들어갈 때가 없다고 생각될 때까지 들어가면서 계속해서 셔터를 누를 것을 권한다, 이것이 바로 대상을 좁혀 보는 방법으로, 이렇게 좁힘으로써 작가가 보고 느낀 것을 보다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가 있게 된다.
풍경사진의 경우, 찍어 놓고 보면 본 대로 찍힌 것이 사실이다. 넓고 시원하게 숲이 있고,물이 흐르고..본 대로의 모습이 다 찍혀 있으니까. 따라서 왜 본 대로 찍히지 않을까 하는 문제에서는 성공한 것이 아닐까 싶지만,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 진짜 문제이다.
단순히 본 것을 본 대로 찍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어디가 아름다운지, 어떻게 아름다운지를 찾아 그것을 따내야 한다.
이때 주의할 것은 풍경 전체를 다 보고 그것을 한 프레임에 담으려 들지 말라는 것이다.
그 전체적인 풍경 속에서 특히 내 눈을 끈 아름다움은 어떤 것인가를 찾아 범위를 좁혀 잡으라는 것이다. '한 발 더 들어가라'는 것이 이런 뜻이다.
남들 다 보고 아는 아름다움이라면 굳이 찍어서 보여줄 필요가 없다. 남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아름다움, 다른 사람은 아직 찾아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아름다움을 찾아 그것을 보고 느낀 대로 찍어야 한다.
사진에 자신이 붙어 제대로 찍히게 되면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많은 것을 덮어놓고 버리기 보다 그 많을 것들을 주제와 어울리게 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른바 통일성의 문제로, 아무리 잡다한 사물이 함께 찍혀도 그 사물들이 어울려 주제를 더 살려 준다면 이처럼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많은 것을 버리고 단순하게만 찍으면 그 내용도 단순해질 우려가 있다.
그 단순함을 벗어나려면 통일성을 지향하고, 주변 사물과 중심 소재와의 조화를 이루어낼 줄 알아야 한다.
바) 확실히 보고 찍자
사물을 좁혀 들어가려면 확실히 보고 찍어야 한다.
확실히 본다는 것은 내가 이 사물에서 보고 느낀 것이 무엇인가 확실히 알고 찍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냥 아름답다든지, 멋이 있다든지, 뭐가 될 것 같아서, 하는 막연한 태도로 찍어서는 안된다. 내 눈으로 확실히 보고 마음으로 느끼기 전에는 셔터를 누르지 말아야 한다.
확실히 보고 찍으라는 것은 내 눈에 띈 대상이 왜 내 눈을 끌었는지를 알고 찍으라는 것이다.
어떤 사물이 아름다우면 왜 아름다운지, 어떻게 아름다운지, 내 눈으로 확인한 뒤에 찍어야 그 사진에 그 사물의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아니, 아름다우면 그냥 아름다운 거지 거기에 왜 아름다운가 하는 까닭이 있다는 말인가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떻게 아름다운가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아름다운 것이 눈에 띄었을 때 직감적으로 느껴서 찍는 것이지, 이래서 아름답고 저래서 멋지고 하는 까닭을 일일이 생각해 보고 찍는다는 것은 과학적 태도이지 예술적 태도는 아니지 않을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까닭을 머리로 생각하고 과학적으로 따져서 찍으라는 것이 아니다.
남다른 아름다움을 느꼈을 때, 남들과 달리 보이고 느껴졌을 때, 나만이 찾아낸 아름다움을 느끼고 보았을 때, 그때 찍으라는 뜻이다. 요컨대 느낌으로 온다는 것이지, 머리를 써서 알아내고,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찾아내라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소재주의에서 벗어나려면 그 사물에서 작가가 발견한 독자적 아름다움이나 새로운 의미가 들어 있어야 한다.아, 이래서 이 여인이 미인이로구나, 또는 미인이라는 게 단순한 외형적 아름다움만이 아니로구나,또는 이 평범한 여인도 이렇게 보니 정말로 아름답구나 하는 깨달음을 보는 사람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
보는 훈련만이 아니라 표현의 훈련도 해야 하지만, 표현 이전에 이루러져야 할 것이 '보는 눈, 느끼는 마음'인 것이다. 이것이 있고 나서 표현도 필요한 것이지 이것이 없으면 애초에 씨가 없은 밭에 물을 주는 꼴밖에 될 것이 없다.
사) 많이 찍자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바위라도 많이 찍어야 한다.
바위야 순간적인 변화는 없을 테니까 천천히 들여다보고 나서 한 컷으로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바위는 순간적으로 변하지 않을지 몰라도 사람의 마음은 순간적으로 바뀐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 것은 사람이지 카메라가 아니다.
때문에 순간순간 바뀌는 마음따라 그때그?? 찍어 놓지 않으면 안된다.
아) 반대방향을 바라보라
한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왕 자기 마음대로 찍는 이상, 제 고집을 부리라는 것이다.
예술에서 고집은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제 세계요, 제 개성이요, 제 인생관이기 때문이다.
예술에서 자기 세계,자기 개성, 자기 인생관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자) 사진을 깨달음이다
사진은 사물을 찍는 수단이 아니다.
아마추어 작가들 중에서는 사진을 사물 찍는 수단으로 알고 찍을 거리를 찾아 발 아프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퍽 많다. 사진을 발로 찍는 것이 아니라고 한 것이 같은 뜻으로, 사진이 찍는 것은 사물이되, 찍고자 하는 내용은 사물이 아니다. 사물 너머에 있는 어떤 것이다.
사진에는 보이는 것만 찍힌다. 구체적 사물만이 찍힌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찍을 수가 없다. 이렇게 사진은 보이는 것만 찍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찍고자 하는 것은 불행하게도 구체적 사물이 아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사물을 통해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theme), 곧 사상(생각)이나 감정(느낌)은 눈에 보이는 사물이 아니기 때문에 사진으로는 찍을 수가 없다.
구체적 사물(소재)로 추상적 관념(주제)을 찍어내는 것, 이것이 사진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찍어야 사진이 제대로 찍히는 것인지는 모른다 해도 사진은 보이지 않는 생각이나 느낌을 나타내는 매체라는 것, 그것을 구체적 사물을 통해 나타내야 하는 매체라는 것만은 머릿속에 넣어 두고 찍어야 한다.
그래야 고민을 하게 되고 고민이 성공적인 사진을 만들어 주는 채찍이 된다,
구체적 사물을 통해 추상적 관념을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은 사물의 구체적 형태가 너무 뚜렸해서 그 사물의 겉모습만 눈에 띄기 쉬운 탓이다. 그 겉모습에 걸려 정작 내타내고자 하는 생각이나 느낌은 전달이 잘되지 않는다. 찍는 사람에게 이처럼 큰 고민거리도 없다.
사과를 예로 들어보자.
사과를 찍는 사람은 단순히 사과가 이렇게 생겼습니다, 하는 의미로 찍지는 않을 것이다. 사과를 통해 그 맛이나 향을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 찍는 것인데, 사과라는 구체적 과일의 모습만 보일 뿐 그 맛이나 향은 웬만해서는 느껴지지 않는다.어떻게 해야 사과의 맛이나 향을 나태낼 수 있을까.맛이나 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이라 어떻게 표현해야 그것이 느껴질지 참으로 난감하다.여기에는 어떤 원칙이나 규칙이 없고 가르쳐 줄 수도 없다.사과만이 아니라 결국 모든 사물에 공통되는 사진의 문제인 것이다.
차) 현장에서 승부하자
'결정적 순간'이라는 말의 뜻을 돌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흔히들 '결정적 순간'이라고 하면 대단한 사건이 찍히는 순간이라고 오해들을 하고 있다.
그것은 아무나 만날 수 없고, 그 순간을 그대로 잡아 찍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식의 오해이다.
그러나 결정적 순간이란 사물과 내가 만나는 내면적 순간임을 밝힌 바 있다.
그 순간은 내 마음이 느끼는 순간이요, 따라서 그것이 결정적 순간인지 아닌지 하는 결정는 내가 하는 것이다.
무슨 얘기인가 하면, 내가 좋아서 찍으면 그것이 결정적 순간이지 결정적 순간이 따로 있어서 그것을 기다렸다가 찍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마음에 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상황이 그렇게 벌러지기를 기다렸다가 찍으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내 마음이 이것이다, 하고 느끼는 순간이 바로 결정적 순간이고, 그때 찍으면 바로 '결정적 순간'의 사진이 된다.
[출처] 사진,예술로 가는 길|작성자 웃음과배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