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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된다는 것 2012.03.21
■ 글쓴이 – 진동선( 사진비평가, 전시기획자, 사진가) 자료출처 - https://blog.naver.com/sabids/150134544363
우리나라에서는 부정과 비리 때문에 거의 시행되고 있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예술대학에 입학하거나 예술 관련 분야의 일을 하거나 혹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 코스를 밟거나 혹은 전시장을 대관하고자 할 때 가장 우선시하는 것이 바로 그 분야의 공인 추천장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땅에서는 서로를 믿지 못하여 예술대학에 입학할 때, 추천장이 필요 없고, 아예 요구하지도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각종 공모전이나 유사 경연대회의 입상, 입선의 스펙이 무시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특정 단체에서는 사진작가증이 유효할지 모르지만, 세계에 유례없는 예술작가증을 들이밀었을 때 역효과를 볼 상황들이 더 많다. 예술로서 작가증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 땅에서 사진작가가 되는 조건은 간단하다.
누구나 스스로 사진작가라고 자칭하면 되는 것이다.
그나마 이 땅에 유일하게 당신이 어떻게 사진작가가 되었는지를 묻는 곳이 몇 군데 있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없다면 난감해진다. 한 곳은 프로 작가 세계이다. 즉 이런저런 검증절차를 거치고 오랫동안 함께 전시하고, 대표성을 지닌 굵직굵직한 국내외 사진전에 초대를 받으면 동료 및 동지로서 서로 주요 전시에 초대를 받아 같은 작가로서 공인받은 경우다.
또 다른 한 군데는 사진미술관이다. 이곳에서 당신이 어떻게 사진작가인지 검증한다. 가령 전공하고 작가로서 전시경력을 쌓았는지, 비록 비전공이지만 그에 따른 전시경력과 학습을 충분히 쌓았는지를 살펴본다. 이렇듯 프로 사진작가 커뮤니티가 인정하는 사진작가 혹은 사진 전문미술관이 인정하는 사진작가라는 검증절차가 있다. 관문은 없고 검증절차는 있는 것이다.
자.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사진을 전공한 바도 없고, 기획전에 초대받은 바 없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전시경력을 쌓고 실력을 갖췄는데 불운하게 지방이었기 때문에 혹은 연계되지 못해 작가로서 적절한 대접을 받지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지방에서 작가로 인정을 받고 있으나 서울 유명작가들이 어울리는 주요 화랑이나 주요 미술관에서는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그런 대표적인 경우가 제주도의 김영갑 사진작가였다. 지금도 그분을 생각하면 나는 가슴이 아프다. 그분이 생전에 그리도 나를 만나기를 희망하였는데 결코 시간을 내지 못했다.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훗날 자신의 도록에 글을 꼭 내게 받으라는 말을 남겨 사후에 그분 도록에 그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고백한 바 있다. 그만큼 힘들다.
그래서 이후 지방을 다닐 때는 혹은 이런저런 특강이나 세미나 혹은 워크숍에 초대를 받으면 더욱더 지방작가, 사진비전공자, 힘들게 작업하는 사람들에게 더 애정이 가고 눈길이 가고 힘이 되어주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마음으로 사진의 길을 가려고 마음먹는다. 즉,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고. 누구도 당신이 어떻게 사진작가가 되었는지 따지지 않으나, 보이지 않게 검증하므로.
며칠 전 나는 <부산, 울산, 포항 현대 사진전>을 기획하면서 참가자 중 5명의 사진가에게 “당신들은 이제 사진작가를 준비해도 된다.”는 인증 사진을 함께 찍고, 사진평론가로서 공인하며, 작가의 작품에 대한 예술적 수준을 인정했다. 엄격히 말하면 인턴사진작가로서 첫머리를 올려준 셈이다. 그러면서 앞으로 프로작가들에게 인정받으려면 다음 사항을 지속해서 일정 시간 동안 지켜내야 한다고 말했다.
첫째, 이론공부. 공부 안 하고 작가 될 수 없다. 사진이론의 수준을 전공자만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둘째, 사진은 물론이고, 말, 행동, 태도가 무겁고 진중해야 한다. 가벼워서는 작가가 될 수 없다. 셋째, 꾸준히 지속해서 사진을 찍고, 사진을 발표하여 검증받아야 한다. 매일 사진 생각을 하지 않는 작가가 작가일 수 없다. 한마디로 열심히 하지 않으면 작가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오래 갈 것인지 믿게 하지 않으면 작가가 아니다. 작가는 오래 하는 사람이다. 오래전 어떤 작가가 내게 그랬다. “10년 후에도 사진하고 있으면 동료로 인정하겠다.” 그러나 솔직히 인턴사진작가로 인정한 5명의 예비 사진작가들이 과연 4가지 사항을 견뎌낼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존경하는 육명심 교수의 말씀이 떠오른다. “어느 구름에서 비 내릴지 모른다. 수많은 학생을 가르쳤다. 그런데 저놈은 틀림없이 앞으로 제법 괜찮은 사진작가가 될 놈이야 했던 놈들은 지금은 어디서 뭐 하는지 알 수 없고,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놈들, 혹은 미련 곰탱이 같았던 놈들이 유명작가가 되어 있으니 내 눈이 틀렸다고 할 수 밖에... 어느 구름에서 비 내릴지는 정말 모르겠더라. 그런데 말이야 답은 하나 나오더라. 무식해도 끝까지 질기게 오래 한 놈이 작가 되더라.”
존경하는 육명심교수의 말씀은 명언이다. 나는 그분의 말씀을 확실히 따른다. 질기게, 오래 가는 사람이 진정 작가다. 끝까지 가 보았던 사람만이 작가로 서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