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1월11일 금요일 드디어 개성역사 기행 관광을 떠나는 날이다..
집에서 기쁜 마음으로 옷가지들을 챙기고 만남의 장소인 부산역에 도착했다..
우리보다 10분 늦게 도착한 은주 친구, 그리고 통일 여성 협의회 최소남 회장님,
6.15 공동선언 사무 처장과 인사를 반갑게 나누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밤10시30분 이제 열차에 탑승하는 시간이다..
임진각까지 출발하는 전세열차 무궁화에 나와 아내 그리고 친구 은주랑 몸을 실었다..
서서히 출발하는 열차...그런데 부산을 벗어나는 쯤에도 열차의 속도는 여전히 느린...
이건 완전 환행 열차가 아닌가.~
세사람이 다함께 이런 류의 열차를 언제 타 보았던가 하며 지난..?
지난날들을 회생해 보며 우린 아주!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ㅎㅎ
잠시후 우린 지난 추억들의 이야기하며 여행의 기쁨맛을 감출수가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려을까..6.16공동선언 사무처장 이란 분이 북한에서 우리들이
지켜야할 중요 부분들을 잘 설명해 준다..
예) 북한 사람과 이야기 나눌때 남한,북한 그렇게 부르지 말란다..
그럼 어찌불러야 되는데요..??
남측(쪽)과 북측(쪽)이란 말과 선생이란 말을 사용하여야 하며 북한 아가씨를 북측
안내원 또는 여성 동무라고 불러야 된다고 한다.잘 될지는 모르지만 마음속으로 새기며..?
그리고 북한으로는 고성능 디카는 반입이 안 된다는 말에 아내와 친구,협회회장 우리에게
고민에 빠지게 했지만 우리들은 내일의 관광을 위해 달리는 열차에서 잠을 취했다..
얼마나 흘려을까...?
새벽5시 임진각 도착! 출입국에서 한국측 안내원이 망원랜즈만 보관하고 카메라는 들고
들어갈 수 있다한다 휴우~~ 다행이다...ㅎㅎ
출경 출입 수속을 맡치고 개성 공단을 거치면서 느낀점을 간략하게 옮겨본다..
어릴적 교과서에서나 본 기억... 북한의 모습 그대로 묻어나 개성 공단과 개성시를
지나는동안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사회 건물 아니 허름한 공장이라 불러야 맞을 것 같다.?
그 공장들의 벽들에는 붉은 굵은 글씨로 위대한 김일성 수령님께서...일터를 하사하셨다..
어쩌구~~ 저쩌구...????? 적혀있고 또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 전쟁터에서
인민군이 전투하는 모습처럼 작업을 실전 전투처럼 임무에 최선을 다하자.........란
글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우리 관광버스가 자나는동안 북한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곳곳에 모여 있는 모습..
자전거 잡고 서있는 모습등은 당국의 지시로 나와있는 모습임을 나는 느낄수가 있었다..
이유인즉 도로에는 눈이 내린 탓으로 사람이 다닌 발자국 또 자전거 자국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또 거의 200m 거리에 한적한 골목길에도 인민군인이 한명씩 보초를 서고 있었다..
또 놀라운 일은 북한 남,녀 안내원은 김일성 대학과 관광대학 두 개의 대학을 맡치고
또 거기에서 인물과 재능이 뛰어나야만 안내원으로 차출 될 수가 있다 한다...
그리고 관광지 부스박스 같은곳에서 과자와 특산품 판매하는 북한 아가씨는 모두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개성공단 직원으로도 대졸 아니면 취직하기는 하늘에 별따기라 한다..
박연폭포가는 길에 버스가 눈길을 달리며 가다! 섰다! 를 반복하며 많은 시간을 지체하며
힘겹게 도착한 박연폭포..!
우리들은 버스에서 써둘러 내려 기념사진을 찍으며 산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대 아내와 나는 침이 박혀있는 낚시 신발로 무장이 되었지만.....?
나의 친구 은주는 남한의 특색이 있는 고운 한복에 등산화를 신었다..
조금 불안해 보이지만 친구 왈~ 이래도 다른 사람들에 뒤지지 않을 만큼 따라 올라
갈 수 있다한다.. 나에겐 가날프게 보이는 친구지만... 넘 당차게 나온다...후후!
나는 빠른걸음으로 관음사를 향해 뛰다 싶이하며 산행을 시작했고 목까지 차오르는
숨을 참으며 중간 중간에 북한개성 산새들을 담았다..
그러기를 반복하다 대흥사 북문을 통과하여 여기서 잠깐! 대흥사 북문에 대한 역사담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대한산성은 고려시기 천마산과 성거산의 험준한 봉우리들을 연결하여 쌓은 견고한
돌성이다..둘레가 약10km인 이성에는 북문을 비롯한 4개의 대문과 여러개의 사이문,
암문,장대 망루 치등 시설물이 남아있다.
특히 규모가 웅장한 북문의 축대와 성벽은 높은 축성의 기술을 보여주는 가치있는
민족 문화유산이다..
그리고 조금더 오르니 범사정 정각이 나온다..
범사정은 1700년에 지은 건물로써 여기에 올라서면 마치 안개 바다위에 떠가는 배와
같다고 하여 <범사정>이라고 이름 지었다..
범사정은 우리 선조들의 휼룡한 건축술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적이다..범사정을
지나니. 드디어~ 관음사에 도착했다..^^
관음사의 몆곳을 촬영하고 있을쯤 아내와 은주친구가 올라온다..??
일행들과 산행시 네가 빠른 걸음으로 오른 이유는 나의 작품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다 같이 오르면 서로들의 사진들을 찍어주어야 하기 때문에 작품사진을 찍을수 없기
때문이였다..이러한 뜻을 아내는 알고 있었지만 은주 친구는 몰라을 것이다...?
여자들을 내 버려 두고 혼자 오르는 친구가 야속하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친구가 산길을 오르 내려오며 엉덩방아 찍기를 두 번이나 하였다니...
친구에게 덧없이 정말 미안했다...
하지만 그 친구가, 친구의 마음을 이해해 주니 기분이 좋았다..^^
이제부터 현대 아산에서 개성역사 관광 고려 오백년 도읍지 소개글 과 비석에 새겨진
글들을 옮겨 적어본다...
박연폭포.
박연폭포 개성시내에서 북쪽으로 27km지점에 위치한 박연리에는 천마산과 성거산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이 모여 연못(박연)을 이루고 그 아래로 37m 낚수의 박연폭포가 있다..
아호비령산맥의 험준한 골짜기로 흘러내리는 박연폭포는 송도삼절의 하나이며 금강산의
구룡폭포,설악산의 대승폭포와 함께3대 명폭으로 꼽힌다..
폭포 위에는 바가지 모양으로 이루어진 둘레 24m,지름8m,깊이 5m정도의 박연이라는
연못이 있다..대웅전은 고려시기인 970년에 세운 관음사의 기본 건물이다..
관음사에는 이밖에 관음굴과 승방,그리고 고려시기에 세운 7층탑이있다..
관음사의 대웅전은 정교한 조각과 하려한 문살로하여 이체를 띠어 선조들의 건축예술적
재능과 슬기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숭양서원.
개성시 선죽동에 위치한 숭양서원은 고려 충신 정몽주의 잡터로 1573년(선조6년)
개성유수 남응운이 유림들과 협의끝에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고,아울러 서경덕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문충당을 세웠다.1575년 문충당에"숭양"의 사액이 내려 국가가 공인한
서원으로 승격 되었고, 1668년(현종9년)이후 김육,조익,우현보 들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사당은 정면 4칸,측면 2칸이고,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이다.동재와 서재는 각각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지었다.현재까지도 정몽주의 유적이 잘 보관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곳이다.
선죽교.
개성 선죽동 중심부에 위치한 선죽교는 919년 고려시대에 축소된 건물로 1392년
정몽주가 이방원에 의해 피살된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최초 다리를 축소하였을 때는 선지교라 불렸다가, 정몽주의 죽음 이후부터 핏자국이
지워지지 않고 주위에 충절의 대나무가 돋아났다 하여 선죽교로 개칭하였다.
다리의 길이는 6.6m이고 너비는 2.54m이며 원래 없었던 난간은 1780년 정몽주의
후손들이 다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다리옆에는 명필 한석봉의 필체가 새겨진 비각 등3개 추모 비석이 서있고, 길건너편
표충각 안에는 두 개의 비석이 있는데, 강직한 충신의 원혼을 달래고,널리 칭송하기
위하여 1740년 영조와 1872년 고종이 각각 세운것이다.
표충비의 오른쪽비는 1740년에, 왼쪽비는 1872년에 세운것으로써 이 두비는 고려
왕조에 대한 정몽주의 <충의>와<절개>를 찬양하는 내용들이 씌여져있다.
표충비는 정몽주를 네세워 사람들 소에서 봉건적 충의사상을 고취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표충비의 높이는 오른쪽의 것이 3.17m이고 왼쪽의 것이 3.58m로서 비들의
균형이 잘 잡혔으며 비를 받치고 있는 거부기는 당시 세련된 조각술을 생동하게
보여주고있다..
고려박물관(고려성균관).
개성시내 북동쪽 부산동에 위치하고 있는 고려 박물관은 고려시대 성균관의 건물과
부지를 이용하여 1988년 개관하였으며, 고려의 역사,경제, 과학, 문화의 발전 모습을
보여주는 1.000여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현제건물은 임진왜란 시기 왜적을 침입으로 불 탔던것을1602부터 8년동안 복구한 것이다..
성균관은 약1만m의 넓은 부지에 명륜당,대성전,동재,서재,동무,서무,존경각,향실
계성사등 약 200칸에 달하는 건물들이 배치되어있다..
성균관 건물 18채로 꾸며진 전시실은 모두 4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야외
전시장에는 불일사5출석탑, 흥국사탑, 현화사7층석탑, 현화사비, 개국사 석등 등의
조각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밖에도 활쏘기터,그네터, 널뛰기터, 씨름터 등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통일관.
개성 남대문 뒷편 자남산을 오르는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통일관은 2개의 대형 연화장과
10실이 넘는 식당을 갖춘 500명 수용 규모의 대형민속요리 식당이다.
북측이 자랑하는 통일관 식당에서는 반상기(개성정식), 개성보쌈김치,인삼닭곰,개성약밥
등의 특산요리를 즐길 수 있다.
관광시 주의 사항.
개성관광중에는 관광지에서만 촬영이 가능하고 버스 이동중이나 북측 주민 및 시설물
촬영은 할 수 없다..
만약 본인 카메라에 북측의 부적절한 사진을 몰래 촬영하였다가 북측 출입 사무소에서
검사원(인민군)이 검사에 적발되며 50~500달러까지 벌금을 부과하고 미납시에는 사진기를
압수 한다..
그리고 북측 반입제한 물품보관은 휴대폰, 고배율 카메라, 망원경, MP3, 남측 인쇄물
(신문.잡지), 라디오등은 남측 출입수속때 보관한다..
여기까지 개성역사 기행을 간략하게 소개해 보았다..
개성에는 눈이 많이 내린 관계로 관광시간이 짧아 다른 여러곳을 다녀보질 못하고
여기까지 밖에 구경 할 수 없는것에 많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떠나오는 동안 마음이 서운하였다..^^
사진가 다대포좋은바다/김용태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