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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풍자-방랑 김삿갓

 
 
 

조선후기 풍자-방랑시인 김삿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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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절 -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 넘어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 잔에 시 한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김삿갓은 치사해서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주었다. 그 돈을 주고 나니 겨우 한 냥밖에 남지 않았다. 죽매는 돈을 받자 발가벗은 몸으로 반닫이가 있는 데로 걸어갔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 기가 막히게 즐거움을 안겨 주었던 그녀의 엉덩이가 그렇게 추해 보일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녀는 그 돈을 반닫이 속 문갑에 넣더니 자물쇠를 잠그고 병풍 뒤로 돌아가서 금세 힘차게 오줌을 누는 것이 아닌가. 아직 젊음을 과시하는 것 같았다. 김삿갓은 그 몰상식하기 짝이 없는 행동에 환멸을 느끼면서 한 마디 말을 내뱉었다. “저, 지금 당장 내쫓지는 않겠지?" “뒷방이 있으니까 오늘은 주무시고 내일 아침 나절에는 떠나시도록 하세요." 죽매가 이렇게 말하고 나서, “송이야, 송이야!"하고 큰 소리로 불렀다. 그때 송이가 얼굴을 내밀자 죽매는 아주 차가운 목소리로, “이 분을 뒷방에 모시도록 해라. 오늘은 너무 늦어서 주무시고 가신단다." “네." 이때 송이는 이런 일이 가끔 있는 듯 그다지 놀라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기생집이니 그렇겠지. 그때 송이가 앞장서 걸으면서 “어서 따라오세요."하고 말할 뿐이었다. 김삿갓은 어떤 한 가지 일에 깡그리 정신을 모으고 있었다. 그 한 가지 생각이란 사실 엉뚱하게도 요강에 대한 연상이었다. 요강에 대한 연원을 따져 보면, 우리나라에는 없었다고 한다. 사실 몽고인이 우리나라를 침입할 때 가지고 온 물건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한 가지 사치품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서민들은 감히 엄두도 못 냈고, 특히 양반 계급이나 기녀들만이 사용했다.

김삿갓은 그 요강에 대해서 시상(詩想)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賴渠深夜不煩扉 (뢰거심야불번비) 네 덕분에 밤중에 드나들지 않아도 되고, 令作團隣臥處圍 (령작단린와처위) 사람의 머리맡에서 잠자리의 벗이 되었구나. 醉客持來端膝? (취객지래단슬궤) 취객은 너를 갖다 놓고 단정히 무릎꿇고, 態娥挾坐惜衣收 (태아협좌석의수) 어여쁜 여인도 끼고 앉아 살며시 속옷을 걷는구나. 堅剛做體銅山局 (견강주체동산국) 단단한 네 몸뚱이는 마치 구리산 같고, 灑落傳聲練瀑飛 (쇄락전성련폭비) “쏴” 떨어지는 물소리는 비단폭포 소리같구나. 最是功多風雨曉 (최시공다풍우효) 비바람 치는 새벽에 가장 공로가 많으니 偸閑養性使人肥 (투한양성사인비) 은밀히 성정(性情) 기르며 사람을 살찌게 하는구나.

안동을 사랑해 주이소~
이제 안동은 금년의 부귀영화를
내년초에 또 한번
지난날의 재현을 기대 합니다
아무리 잔치를 벌여도
찾아 오는이가 없다면 그 잔치는
실패이겠지요?
해서~
우리 경북지부는
탁월하신 지부장님이하
전 회원이 일심으로 그 행사를
따뜻하게 대워 나가고 있습니다
2010년 1월 16일~! 2010년 새해 첫 촬영대회~!
안동에서 만납시다~
억수로 기대해도
결코 억울함이 없을 것입니다~ㅎㅎ
~ 디사협 전 회원님들~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