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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 백호, 주작, 현무, 해태, 봉황…

돌에 살아 움직이는 조선 석수 의 손맵시


경복궁의 석조 동물

 


우리나라에서 돌로 만든 짐승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경복궁입니다.

 

경복궁에는 광화문 앞에 있는 해태 두 마리부터 시작하여 경회루 난간석 법수(法首·난간 귀퉁이에 세운 기둥머리) 및 근정전 월대의 법수까지 수많은 동물 조각이 있습니다. 근정전의 월대에만 총 56마리의 동물조각이 있으니 경복궁을 석조(石彫) 동물원이라고 불러도 되겠지요.

 

이제부터 경복궁 돌짐승 구경을 해 보실까요.

경복궁에는 유난히 해태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조선왕조의 역사에는 왕과 신하들 간의 세력 다툼이 끊이지 않고 이어집니다. 왕의 힘이 부족했을 때에는 신하들의 강요로 사랑하는 왕비를 내쫓는 일도 벌어집니다.

 

대원군은 쇠약해진 국력을 키우고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경복궁 중건을 무리할 정도로 강행하였습니다. 그래서 궁궐 정문 앞에서부터 해태를 배치하여 신하들의 기를 죽이려 했나봅니다.

 


해태(시비, 선악을 판단하여 안다는 상상의 동물)는 해치(해치)라고도 하는데 머리에 뿔이 하나 있는 동물로 성질이 곧아서 잘못한 사람을 뿔로 받고, 거짓말하는 사람을 깨문다고 합니다. 관리의 부정과 비리를 탄핵하는 사헌부 관리의 흉배에 해치를 넣었고 해치관을 썼답니다.

 

광화문 앞 해태는 뛰어난 조각작품입니다. 제과회사 심벌로 쓰이는 등 다소 신선미가 떨어집니다만 자세히 살펴보면 조각솜씨가 범상치 않고 조형미가 뛰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

당대 최고의 석수가 한껏 기량을 펼쳐 만든 것이지요. 이 해태 앞에서는 어떤 신하라도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했다니 왕권의 상징이었습니다.

 

근정전과 근정문의 계단에는 왕만이 다닐 수 있는 구역이 있습니다. 중심에 사각 답도(踏道)가 있고 좌우에 두 마리 해태를 배치하였습니다. 계단석의 전면에 당초문을 조각하여 품격을 높였습니다.

 


이 국왕 전용 계단은 왕도 평소에는 이용하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답도에 새겨진 봉황 두 마리가 닳고 닳아서 번들번들 윤이 나고 문양이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 이유는 계단 앞에서 몇 분만 지켜보면 알게 됩니다. 어린이들이 미끄럼 타는 것은 그렇다 쳐도 어른들이 구둣발로 밟고 오르는 것은 차마 눈뜨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조선시대에 그랬다면 당장 사형 감이지요. 요즈음에는 쇠 난간으로 막아 놓았는데도 밟고 올라가는 인간이 있습니다. 못 말리는 인간이지요. 닳아서 잘 보이지 않는 문양을 제대로 그리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에는 서울의 여러 궁궐 중 유일하게 상·하 월대에 모두 난간을 둘렀습니다. 이 난간 기둥과 계단 기둥석에 갖가지 동물을 조각하였습니다. 법수라고 하는데 12지신과 오방신입니다. 북쪽에는 쥐, 동쪽은 토끼, 소와 뱀을, 남쪽에는 말과 호랑이를, 서쪽은 닭과 양을 배치하여 근정전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궁궐을 지키는 수호 동물이라면 모두 험상궂은 얼굴이어야 하는데 순하디 순한 얼굴이라는 점입니다. 한국 동물 조각의 특징이며 한국인의 특성입니다.

 

동물들은 마치 관람객을 구경하는 듯한 표정인데 그 중 호랑이는 민화에 나오는 까치 호랑이 같아서 귀엽기 짝이 없습니다. 원숭이의 표정은 정말 압권이어서 볼 때마다 사람을 웃깁니다. 펜화가는 이 원숭이에게 ‘원숭이 철학가’라는 별명을 붙여놓고 만날 때마다 놀려댑니다. 사람 형상의 조각을 잘하지 않던 조선의 석수가 인간의 모습을 묘사했다면 얼마나 훌륭하게 만들어 놓았을까 상상하게 만드는 걸작입니다.

 


윗 월대 북쪽 계단 기둥 돌에 거북을 닮은 현무, 동쪽 계단 기둥 돌에 청룡, 남쪽 기둥 돌에 주작, 서쪽에는 백호를 두었습니다. 12지신이 장교급 호위군이라면 오방신은 장군 급입니다. 그런데 오방신 중 황룡은 어디에 있을까요? 오방색 중 노랑은 중앙색입니다. 따라서 황룡은 근정전 천장에 있답니다.

 

청룡은 긴 몸을 좁은 자리에 앉히려고 둘둘 감은 모습이 특이합니다. 욕심도 많아서 여의주를 두 개씩이나 갖고 있습니다. 입에 물고 있는 것과 왼발로 움켜쥔 것이 여의주입니다.

12지신과 오방신은 모두 한 쌍씩 마주보고 있는데 생긴 모양으로 암수를 구별하기는 어렵습니다. 펜화가도 모양으로 암수 구별을 해보려고 고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알고 보니 위치에 따라 좌측은 수놈, 우측은 암놈이랍니다. 왜냐고요? 우의정보다 좌의정이 높은 직책이 아닙니까. 그럼 좌우는 어느 쪽에서 보는 것이 기준이 될까요? 물론 왕이 옥좌에서 보는 것이 기준이지요.

 

상하 월대의 귀퉁이에도 해태가 한 쌍씩 돌출되어 있는데 새끼까지 딸려 있어 ‘해태가족’이라고 부른답니다. 이 또한 해학적이어서 보는 이들을 즐겁게 만듭니다. 이 해태의 암수는 새끼가 붙어있는 것을 보면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