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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을 주제로한 영화 <에로이카>(감독:사이먼 셀란 존스) 중 한 장면에서 는 극적인 한순간이 묘사가 됩니다 .

(2003년 BBC제작 => 베토벤역 : 아이언 하트, 엘리엇 가디너 지휘, ‘혁명과 낭만관현악단)

(아래 링크 중 약 150초 부분부터- 나머지 대사해석은 각자 알아서...ㅎㅎㅎ)

http://www.youtube.com/watch?v=NkVuv0kLqNM&feature=related

 

베토벤의 교향곡 3<에로이카> 리허설을 지켜본 하이든은 충격을 금치 못합니다.

상당히 길고 아주 복잡하군. 못 들어본 음악이야.

다른 어느 작곡가도 이런 걸 시도해 본 적이 없어.

이해하기 어렵고 상당히 소란스럽지만, 정말 새롭긴 하군.”

소감을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한 하이든은 두어 걸음 옮긴 뒤 한마디 덧붙입니다.

오늘을 기해 모든 게 새로워졌구나.”

 

오늘을 기해 모든 게 새로워졌다는 하이든의 반응은,

자기 시대는 갔고 이제 베토벤의 시대가 왔다는 것을 담담히 받아들인 것으로 들립니다.

하이든은 베토벤을 만나 우정을 쌓고 싶어 했을 겁니다. 베토벤도 아마 그러했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이든과 멀어지는 것은 베토벤에게도 고통스런 일이었고,

자신이 젊고 생산력이 왕성한데 비해 스승이 늙어 가며 일을 못하게 됐다는 점에 연민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루드비히 판 베토벤>중에서, 메이너드 솔로몬 저, 김병화 역)

 

음악 교과서에는 고전파작곡가로 늘

하이든(1732~1809), 모차르트(1756~1791), 베토벤(1770~1827)의 이름이 나옵니다.

세 사람은 서로 아는 사이였습니다.

 

베토벤은 하이든에게 빈에 도착한 1792년 말부터 이듬해까지 1년 남짓 배운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제자인 페르디난드 리스에게 역정을 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하이든에게서 배운 것이 하나도 없다.

스승으로부터 베토벤이 고전 음악의 양식을 배운 건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정신은 베토벤 음악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또한 하이든과 무관할 거라는 점 또한 사실일 것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계몽사상에 심취했고 혁명에 열광했던 베토벤은 

평생 귀족의 후원 아래 활동한 하이든을 못마땅하게 여겼을 수 있습니다.

빈에서 경력이 쌓일수록 베토벤은 하이든을 경쟁자로 여겼고,

자기 독자성이 확연히 드러나는 1800년 즈음에는 이 대선배의 가르침이

자신의 재능을 펼치는 데 질곡이 된다고 느꼈습니다.

자신의 새로운 길은 하이든의 취향에 맞지 않으며,

자신의 음악이 하이든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이든은 반면에 베토벤의 무서운 재능을 일찍부터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신참일 뿐인 베토벤이 신속하게 빈의 상류사회에 받아들여지고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인정받는 데 대해 질투와 경계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한 베토벤의 천재성이 빛나기 시작할 즈음엔

그가 자신을 스승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데 대해 안타까움과 분노마저 없지 않았을 겁니다.

 

이와는 다르게 프리메이슨 동료였던 하이든과 모차르트는 24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아끼며 친밀한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하이든은 모차르트를 역사상 최고의 작곡가로 인정하며 찬탄해 마지않았고,

모차르트는 하이든을 늘 파파 하이든이라 부르며 믿고 따랐습니다.

모차르트는 1785, 각고의 노력을 들여 만든 6곡의 현악사중주곡을 하이든에게 헌정하기도 합니다.

하이든은 이 곡이 연주된 뒤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에게 하느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당신의 아들은 내가 만났거나 이름을 들어본 사람 가운데 가장 위대한 작곡가입니다.

그는 세련된 감성과 취향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가장 심오한 작곡 기법에 능통합니다.”

모차르트가 하이든에게 바친 현악사중주곡 중 D단조 K.421

http://www.gosinga.net/koechel-player.php?IDkv=63

 

1787, 16살의 베토벤은 빈의 모차르트를 찾아와 즉흥연주를 들려주었고,

모차르트는 언젠가 이 젊은이를 온 세상이 주목하게 될 것이라고 평합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어머니의 결핵이 위중해서 곧 본으로 돌아가야 했고,

두 사람의 만남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모차르트는 1791, 35살에 죽었습니다.

베토벤이 빈에 데뷔한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인 179211, 그의 나이 22살 때였습니다.

만약 모차르트가 10여년만 더 살아서 <에로이카>의 초연을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지 몹시 궁금하기만 합니다.

두 사람이 동시대에 함께 활동하며 서로 자극과 영향을 주고받았다면 어떠한 음악이 태어났을까요,

생각해보면 안타까울 뿐 두 사람 사이에는 경쟁이나 애증이 생길 겨를이 없었던 겁니다.

1804년 초연된 <에로이카>에서 베토벤은 하이든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새로운 음악세계를 창조했습니다.

 

베토벤은 18083, 하이든 76회 생일을 축하하는 음악회에 참석했습니다.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가 연주됐고,

베토벤은 하이든 앞에 무릎을 꿇고 연로한 스승의 손과 이마에 열정적으로 입 맞추었습니다.

이후 베토벤은 하이든에 대해 말할 때 과거의 원망과 괴로움 없이

언제나 따스한 존경과 애정을 표현했다고 전합니다.

베토벤은 하이든을 헨델과 바흐, 글루크, 모차르트와 동등한 존재로 인정했고,

자신은 그 인물들 옆자리를 차지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하이든과 베토벤은 애증이 얽힌 사제지간이었고, 결국 시간과 더불어 해피엔딩으로 나아간 셈입니다.

음악에서 타협을 몰랐지만 속마음은 따뜻했던 베토벤이었기에 자연스레 화해의 길을 택했을 것입니다.

이에 앞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한 뒤 자기가 물러나야 할 때를

흔쾌히 인정하고 받아들인 하이든의 지혜를 간과해서도 안 될 같네요.

 

모든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입니다.

'생뚱맞게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 과 음악이야기?' 하실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베토벤과 하이든의 이야기처럼 우리가 추구하는 사진의 세계도 예외 일수는 없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본 동료 혹은 선후배의 사진 한장이 

하이든이 베토벤의<에로이카>를 듣고 느꼈던 것과 같은 충격으로 다가올수도 있습니다.

자신들의 목소리가 너무도 크고 제 잘난멋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 모두가 그러한 충격을

하이든처럼 냉철하게 생각하고 상대를 인정하는것 또한 진정한 사진인이 아닐까요?

그리고 더 나아가 변화를 어떻게 맞아야 할까를 이제부터 다시한번 고민해 보는것은 어떨까요?

 

 

※ 참고자료

- <루드비히 판 베토벤>, 메이너드 솔로몬 저, 김병화 역

- 사이먼 셀란 존스' 감독의 영화 <에로이카> : 2003년 BBC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