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기제조원: Canon카메라모델: Canon EOS 5D Mark IV플래시: Flash did not fire, Auto초점거리: 24.0 mm조리개변경: 14/1노출방식: Aperture priority노출모드: Auto exposure노출시간: 1/15 sec노출보정: 1/-3W/B: Auto white balanceISO: 100촬영일자: 2024:10:24 07: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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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열여덟에 결혼하셔서 10년 동안 아들을 못 낳아
할머니로부터 온갖 구박을 받다가 집안 장남인 저를 낳았습니다.
그 엄한 할머니가 미역국을 직접 끓여 엄마 산간호를 했다 하시며,
엄마는 내가 귀한 자식으로 태어났다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국민학교와 중학교 다닐 때 비 오면
교문 밖에서 우산 들고 서 있는 것은 우리 엄마였습니다.
아들 비 맞을세라 가깝지 않은 거리를 오는 비 다 맞으며 오시고,
날 못 볼까 노심초사하며 교문에 서 계신
엄마의 초라한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어머니는 서릿발 같은 아버지 성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저는 물론 우리 네 자식을 기르면서 단 한 번 험한 말 한적 없고,
‘사랑의 매’도 때린 적 없었던 자애한 분이셨습니다.
두 달 전 제천으로 네 자녀 부부 동반으로 놀러 갔을 때
힘들어하시면서도 많이 좋아하셨는데,
그때 찍었던 사진이 아들의 최고 명작인 ‘영정사진’이 되었습니다.
입원해 중환자실에 들어가면서 의사가 내일 넘기시기 힘들다고 하셔서
형제들과 급하게 장례식장, 장지를 알아보았는데,
한 달을 살아계셔서 엄마 옆에서 더 많이 보며 대화하고,
기도하며 임종을 볼 수 있게 기회를 주신 고마운 엄마입니다.
구십 세 다 되어 세례 받고 집사가 되어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은 우리 엄마,
93년 평생 남 말 안 하고, 내 탓이라는 생각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사랑 많으신 어머니,
몇 해 전 아버지 돌아가시고, 이제 엄마까지 돌아가시니
저는 천애고아(天涯孤兒)가 된 느낌입니다.
조석으로 문안 전화드렸는데 이제 전화 못 드리니
허전하고, 불안하기까지 하여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이 글을 쓰며 많이 울었습니다.
1년 후에 엄마가 보고 싶으면 어떡하지...
장례 때 소리 내어 울지 못했지만 그때는 엄마 모신 곳에 가서 펑~펑 울겠습니다.
- 엄마 돌아가신 지 한 달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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