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글 다음글


기기제조원: Canon카메라모델: Canon EOS 5D플래시: Flash did not fire, Auto초점거리: 16.0 mm조리개변경: 18/1노출방식: Manual control노출모드: Manual exposure노출시간: 1/40 sec노출보정: 0W/B: Auto white balanceISO: 160촬영일자: 2012:07:20 17:25:31

기기제조원: Canon카메라모델: Canon EOS 5D플래시: Flash did not fire, Auto초점거리: 16.0 mm조리개변경: 18/1노출방식: Manual control노출모드: Manual exposure노출시간: 1/40 sec노출보정: 0W/B: Auto white balanceISO: 200촬영일자: 2012:07:20 17:30:49

기기제조원: Canon카메라모델: Canon EOS 5D플래시: Flash did not fire, Auto초점거리: 16.0 mm조리개변경: 18/1노출방식: Manual control노출모드: Manual exposure노출시간: 1/40 sec노출보정: 0W/B: Auto white balanceISO: 100촬영일자: 2012:07:20 17:32:57

본래 경덕궁(慶德宮)으로 불렸다. 유사시에 왕이 본궁을 떠나 피우(避寓)하는 이궁(離宮)으로 지어졌으나, 궁의 규모가 크고 여러 임금이 이 궁에서 정사를 보았기 때문에 동궐인 창덕궁에 대하여 서궐이라 불리고 중요시되었다. 창건된 것은 1617년(광해군 9), 당시 광해군은 창덕궁을 흉궁(凶宮)이라고 꺼려 새 궁을 세우고자 하여 인왕산 아래에 인경궁(仁慶宮)을 창건하였다. 그런데 다시 정원군(定遠君)의 옛 집에 왕기가 서렸다는 술사의 말을 듣고 그 자리에 궁을 세우고 경덕궁이라고 하였다.그러나 광해군은 이 궁에 들지 못한 채 인조반정으로 왕위에서 물러나고, 결국 왕위는 정원군의 장남에게 이어졌으니 그가 곧 인조이다.

인조가 즉위하였을 때 창덕궁과 창경궁은 인조반정과 이괄(李适)의 난으로 모두 불타 버렸기 때문에, 인조는 즉위 후 이 궁에서 정사를 보았다.창덕궁과 창경궁이 복구된 뒤에도 경덕궁에는 여러 왕들이 머물렀고, 이따금 왕의 즉위식이 거행되기도 하였다. 즉, 제19대 숙종은 이 궁의 회상전(會祥殿)에서 태어났고, 승하한 것도 역시 이 궁의 융복전(隆福殿)에서였다. 제20대 경종 또한 경덕궁에서 태어났고, 제21대 영조는 여기서 승하하였다.<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