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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성당의 최고 명물인 콜롬버스무덥
146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롬버스는 높이 3m 가로 2m 세로 2,5m. 인 그의 무덤은
땅에 묻혀져 있는 것이 아닌 4명의 사람이 관 하나를 떠받들고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관을 떠 받들고 있는 4명은 카스티야, 레온, 아라곤, 나바라의 왕을 의미하고 있다.
앞의 두명은 콜롬버스의 탐험 정책을 적극 지원했던 왕이라서 표정이 밝고, 뒤의 두명은 반대했던 왕이라서
표정이 아주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다고 한다
1504년 이사벨 여왕의 뒤를 이어 페르디난드 2세가 왕 위에 올랐다.
평소 콜롬버스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대신들은 콜롬버스를 비난했고
콜롬버스는 직위 박탈은 물론 재산까지 몰수 당하며 비참한 말년을 보내개 됐다.
이에 콜롬버스는 유언으로 "난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을것이다"는 말을 남겼다.
콜롬버스 유족들은 콜롬버스 시신을 신대륙 쿠바 땅에 묻었다. 하지만 392년 후인
1898년 스페인 령이었던 쿠바가 독립을 하면서 스페인은 콜럽버스 유골이 훼손될 것을 우려,
콜롬버스 유골을 스페인으로 옮겼다. 처음에는 콜롬버스 관을 매장하려 했지만
스페인 정부는 스페인 땅에 콜롬버스 무덤이 닿지 않도록 콜롬버스 마지막 유언을 지켜줬다.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