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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호국 보훈의 달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조국을 위해 자기 몸을 아끼지 않았던 병사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 봅니다. 

1949년 5월 3일 새벽 북한군은 남침 전에 국군의 전투력을 탐색하기 위해 개성 송악산의 아군 진지를 기습 침공 점령하였습니다.

1949년 5월4일,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 북한군의 기습작전으로 점령된 개성 부근 송악산을 탈환하려고 공격을 개시한 1사단 11연대는 전투가 진행되면서 수적 열세와 적의 토치카에서 맹렬히 쏘아대는 기관총 사격 때문에 많은 희생을 내고 고지 7~8부 능선에서 공격이 좌절되고 말았다. 전투를 수세에서 공세로 뒤바꾸고 고지를 점령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특공대를 편성해 적의 토치카를 파괴하는 것밖에 없었다.

이 소식이 사병들에게 전해지자 제일 먼저 손을 들고 자원한 병사는 부사관 교육대 분대장 서부덕 상사였으며, 이어 김종해 상병 등 나머지 인원이 지원해 특공대가 편성됐다. 오후 1시30분. 특공대는 행동을 개시했다. 각자 81㎜ 박격포탄에 수류탄을 장치한 특제폭탄을 가슴에 안고 개인별로 정해진 목표를 향해 약진했다. 포탄은 무거웠고 보슬비가 내리는 진격로 또한 험준한 산악이어서 그들을 괴롭혔다.

오후 2시 정각. 아군의 모든 지원사격이 중지된 후 서상사는 박격포탄을 안고 단독으로 돌진, 적 토치카를 향해 힘껏 던졌다. “꽝”하는 굉음과 함께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나머지 특공대원들도 적의 포화를 뚫고 각자 맡은 목표까지 가는 동안 적탄에 다리와 팔·복부 등에 관통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적 토치카를 육탄 공격, 모두 파괴하고 조국의 수호신으로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때를 놓치지 않고 사기 충천한 아군의 돌격으로 마침내 고지를 탈환했다. 또한 적 사살 137명, 기관총 등 114정의 무기를 노획하는 대전과를 거두었다.

정부는 이들을 `육탄 10용사'로 명명하고 이들의 조국애와 희생정신을 기려 서상사는 소위로, 나머지 9명은 상사로 특진시키는 동시에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하고 모두 국립묘지에 안장했다.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선다면 이슬같이 죽겠노라”고 다짐했던 이들이야말로 군인으로서 충성의 극치를 보여준 표상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