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지만 읽어 보세요 ^^
귀순배우 김경복(25). 한국에서는 아직 배우라는 타이틀이 어색하지만 북한에서는 적어도 촉망받던 배우였다. 김일성으로부터 친필사인을, 김정일로부터는 표창장을 받았으니 그야말로 앞길이 보장된 배우였다. 하지만 김경복은 모든 것은 뒤로한채 한국을 택해야 했다. 아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경복아, 아빠하고 같이 넘어가자. 이 정권은 언제 망할지 몰라." 뜬금없는 아버지의 제안에 김경복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아버지는 김일성 종합대학을 나온 엘리트 출신. 어머니는 당원이었다. 소위 '잘나가던' 핵심계층인 셈이다. 한데 탈북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몰래 남한 방송을 듣곤 했습니다. 이 정권은 더이상 희망이 없다는 말씀도 하셨죠. 하지만 탈북이라,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김경복은 혼자 북에 남기로 했다. 이유는 단 하나, 최고 인민배우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위해서였다. "어릴적 우리는 '헐벗고 굶주린 남한 동포들'이라 배웠습니다. 어서 빨리 통일되어 쌀과 비단을 보내야 한다고 말이죠."
춥고 배고픈 남한에 예술이란게 존재할까? 김경복씨는 회의적이었다. "5살때 무용을 했어요. 그러다 10살때 아역배우로 데뷔했죠. 연속극(드라마) 주인공 역할도 했어요. 연기가 좋아 대학도 평양 예술대학 연극과를 택했고요. 탈북을 한다? 그건 제 꿈을 포기하라는 말이었죠." 결국 김경복씨는 홀로 북녘땅에 남았다. 반면 4식구는 남한땅을 선택했다.
그렇게 우역곡절끝에 가족들은 자유를 얻었다. 하지만 김경복씨는 달랐다. 되려 탈북자 가족이라는 꼬리표가 자신을 족쇄처럼 조여왔다. "기자회견을 통해 아버지의 신분이 밝혀졌죠. 북한이 발칵 뒤집혀 졌어요. 그리고 저는 곧바로 강제 추방을 당했죠."
추방생활은 악몽 그자체였다. 대개 남은 남은 탈북자 가족들은 한곳에 격리돼 수용생활을 한다. 일종의 감옥생활이다. 물론 그 고생은 말로 설명을 못할 정도다. "하도 탈북자가 많으니깐 보통은 그냥 실종신고로 처리되죠. 하지만 핵심계층이 탈북하면 사돈에 팔촌까지 잡아 들입니다. 황장엽씨 가족들은 추방이 아니라 아예 매장 당했죠."
전망도 유망한 배우에서 하루아침에 죄인이 된 김경복씨. 북한에 대한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루에 한끼도 먹기 힘듭니다. 쌀밥은 꿈도 못꾸고요. 털옥수수 같은 걸로 끼니를 때우죠. 정신적 육체적 충격이 너무 컸어요."
그래서인지 김경복씨는 쓰러지고 말았다. 늑막염이었다. "몇번을 아프다고 호소했죠. 하지만 치료는 없었어요. 그러다 결국 정신을 잃었고 눈을 뜨니 병원이었어요." 김경복씨는 결심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매 한가지. 어차피 죽을 거라면 가족들 얼굴이나 보고 죽자고 말이다.
탈북을 결심한 이후 김경복씨는 병원 사정을 파악했다. "산골에 위치한 작은 병원이었죠. 보름정도 있으니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겠더라고요. 나를 감시하던 요원은 새벽 1시가 되면 자러 간다는 사실, 간호사방에는 자물쇠가 없다는 사실 등을 알게됐죠."
그리고 D 데이. 수술가위를 훔친 김경복씨는 자신의 긴 머리를 짧게 자른 뒤 새벽에 탈출을 시도했다. 그 뒤로 한 200리길을 정신없이 뛰었다. "뒤를 돌아보면 누군가 잡을 것만 같았어요. 슬리퍼 하나만 신고 맨발로 정신없이 뛰었죠. 그 다음날 저녁까지 말이예요. 정신을 차려보니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고드름처럼 붙어있더군요."
몇번의 죽을 고비를 가까스러 넘기며 김경복씨는 신의주로 향했다. 때로는 학생으로, 때로는 애기엄마로, 때로는 장사치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신의주는 국경지대라 이중, 삼중으로 검문 검색을 해요. 낙타가 바늘 뚫는다죠? 그것보다 더 힘들어요. 어찌나 경비가 삼엄한지. 어떻게 살았냐고요? 그냥 살 운명이었나봐요. 그렇게 밖에 할말이 없네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던가. 김경복씨는 사투끝에 압록강변을 바라보게 댔다. "평양을 제외한 북한은 생지옥이나 다름없어요. 끼니를 때우기 위해 몸을 파는 여자가 수백이고, 버려지는 아이가 수천이예요. 그러니 다들 탈북을 시도해요. 압록강변에 탈북자 시체가 부지기수예요. 대부분 경비병의 총에 사살됩니다. " 김경복씨는 그런 북한의 현실을 몸소 느꼈기에 더욱 이를 악물고 강을 건넜다. 차가운 물살이 살을 도려냈지만 참고 또 참았다.
2000년. 탈북시도 6개월만에 김경복씨는 꿈에 그리던 가족들 품에 안겼다. "부모님과 함께 살 수 있다는 것, 그것 하나로 행복해요. 얼마나 그리워 했던 부모님 품인데요. 사실 부모님은 아직 저를 보면 '미안하다' 그러세요. 하지만 저는 괜찮아요. 여기서도 얼마든지 제 꿈을 펼칠 수 있으니까요."
최근 김경복씨는 브라운관을 통해 서서히 얼굴을 알리고 있다. 물론 비중있는 역할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단다. '꼭 한번 만나고 싶다'나 '역사 스페셜' 등 재연프로그램에 이미 가능성을 인정받은 김경복씨는 앞으로 드라마나 영화도 계획중이라고 전했다. 지금은 매주 수요일 MTV '통일 전망대'에서 Q&A코너를 진행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