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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미국 뉴저지주의 호보켄에서 태어났다. 1881년 자녀 교육에 열성적인 부모를 따라 독일로 이주한 뒤 1883년 전기공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베를린 과학기술전문학교에 들어갔다. 몇 개월 후 구입한 소형 카메라에 관심을 가지면서 전기공학을 포기하고 사진연구로 전향하였으며, 정색 감광재료색소(整色感光材料色素)의 합성에 성공한 H.W.포겔 교수와 알게 되면서부터 사진기술 연마에 열중, 삼색판(三色版)을 연구하였다(1890∼1892). 19세기의 지배적 사진양식이었던 회화적 사진을 반대하고, 카메라 기능에 충실한 핀트에 의한 리얼리즘 묘사를 목적으로 하는 스트레이트 포토그라피를 주장하는 한편, 사진조형에 있어서도 근대조형의 이론을 도입하였다.

 

1902년 '사진분리파(Photo-Secession Group)'를 결성한 그는 미국 아마추어 사진계의 지도적 위치에서 에드워드 스타이컨(Edward Steichen)을 비롯한 당시의 신예 사진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이러한 공적으로 '미국 근대사진의 아버지'로 불린다. 많은 걸작 중에서 핸드 카메라를 사용하여 스냅 사진적인 묘사 효과를 나타낸 《종착역》(1893)과 《3등 선실(船室)》(1907)은 특히 유명하다. 또한 ‘아마추어 사진협회’의 기관지 《America Amateur Photographer》와 카메라 잡지 《Camera Notes》 《Camera Work》를 편집하였다.

 

1905년에는 뉴욕에 291화랑(291 Gallery;포토시세션갤러리)를 열어 사진분리파의 작품들을 전시할 공간을 마련하고 유럽 근대미술을 소개하는 장소로 활용하였다. 1924년 화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와 결혼하였으며, 그녀를 모델로 한 수백 점의 연작 인물사진을 남겼다. 1946년에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작품 및 근대 미술 수집품은 유언에 따라 미국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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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스티글리츠에 대한 자료를 보면서 새로운 사진가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주 오래된 작품들을 보면서 경이롭기도 하고 작가의 깊은 시선에 매료되었습니다.

 

그의 인물사진에서는 한결같이 깊고 그윽한 눈빛을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료에 올린 사진 말고도 많은 작품을 보게되었습니다.

 

진지하게 접근하고, 긴 시간을 인내하고, 진심을 담은 작품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 디지털 시대에서 쉽게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어 스스로를 되돌아 볼 수 있었던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공부할 수 있게 물꼬를 터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