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랭과 '떠돌이 이주민 어머니'
도로시 랭은 1930년대 미국 농업안정국 (F.S.A)이 벌린 사진 운동을 통해 미국의 다큐멘터리 사진의 전통을 발전시킨 사진가이다.

FSA 사진운동에 참여한 사진가들은 제각기 다른 주제의 작업을 나누어 맡았는데, 그녀는 주로 일자리가 없어서 일거리를 찾아 떠돌아 다니는 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전문으로 다루었다.
그녀는 한 시대의 사건을 단순히 기록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인간의 내면적인 진실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로운 길을 터놓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1929년에 시작된 세계적인 경제불황으로 말미암아 비롯된 사회적 불안은 그녀에게 더할 나위없는 절호의 사진적 테마였다. 그녀는 완숙된 사진가로서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녀의 대표작이자 FSA 사진들 중에서 가장 큰 반향을 받았고 또한 많이 출판되었던 사진은 '떠돌이 이주민 어머니'이다.
1936년 3월 중부 캘리포니아에서의 한달간의 사진촬영 여행을 마무리하고 달콤한 휴식을 기대하며 카미노 리얼 (Camino Real) 고속도로를 따라 그녀의 차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지친 몸으로 비오는 도로를 달리다 도로 반대편 귀퉁이에 '완두콩 수확자 수용소'라고 쓰여있는 조잡한 게시판이 지나치는 것을 보게 된다. 20여 마일을 달리다 그녀는 스쳐 지나갔던 캠프의 영상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수용소쪽으로 차를 돌렸다. "아무런 이유없이 본능을 따랐어요. 집으로 귀향하는 비둘기처럼 어느새 내차를 칙칙한 수용소안에 주차시키고 있었어요."

자신의 기자용 카메라, 휴대용 삼각대를 챙긴 그녀는 처참한 텐트안에서 두 아이에 둘러싸여 어린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32세의 플로렌스 톰슨을 발견하였다. 대지의 강렬한 태양아래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힘겨운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녀는 훨씬 더 늙어보였지만 그녀의 나이는 서른 둘에 불과했다. 랭은 사진을 찍을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난 허기지고 절망적인 어머니를 보고 그녀에게 다가 갔어요. 나의 존재와 카메라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녀는 자기의 나이와 냉해로 수확에 실패한 완두콩밭 가장 자리에 기거하고 있었고, 음식을 사기 위해 그녀의 차에 달린 타이어들을 얼마전에 팔았고 아이들이 잡은 새들과 주변에 있던 얼어붙은 채소들을 먹고 생계를 유지해 왔다고 말했다. 기울어져가는 텐트에 그녀의 아이들과 앉아 있었어요. 내 사진이 아마도 그녀를 도와줄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녀는 나를 도와 주었고 그래서 서로 동등한 입장일 수 있었어요."라고 회고록에 쓰고 있다. 그녀는 그곳에 10분동안 머물면서 6장의 사진을 촬영하였다.

이 여섯장의 연작사진은 이러한 굉장한 이미지를 발표하기 위해서 사진가가 겪었던 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가 된다.
첫번째 사진부터 마지막 사진까지 랭은 파사체에 점점 더 가까이 움직였고 어머니를 강조하며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심지어 어머니의 어깨에 움추려 있는 두아이의 얼굴은 숨겨져 있다. 사실 여기서 랭이 이후에 찍은 아버지를 포함해 여섯명의 식구를 가진 가족을 볼 수 있다. 랭은 만약 기회만 주어진다면 지금의 고통의 생활에서 벗어나 좀 더 부유한 미래로 그들의 가족을 이끌 수 있다는 어머니의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두 명의 아이와 가난한 어머니를 프레임에 넣음으로서 그녀의 주제를 교묘하게 다루었다.
그 마지막 클로우즈 업된 사진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떠돌이 이주민 어머니' 이다. 집에 돌아와서 도로시 랭은 몇장의 인화를 하고 이 사진들을 샌프란시스코 뉴스 (San Francisco News) 에 주었는데, 이 신문사는 이 사진을 “굶주린 농촌에 식료품을 조달해야...”라는 제목의 기사와 함께 게재하여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미국정부의 정책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이후 랭은 그녀의 두 번째 남편 폴 테일러와 함께 가난한 이들을 위한 청결하고 안전하며 구입가능한 주택의 건설을 위한 투쟁에 직접 참가하였고 빈민을 위한 여러 사업에 참가하여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녀는 정책적인 사진작업을 추진하면서도 삶의 진실을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감으로써 막다른 상황에 부딪힌 인간의 내면세계를 뚜렷하게 부각 시켰다. 그리하여 그녀의 사진은 당시에는 한낱 한 시대의 사건들의 기록에 지나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역사의 증언이 되고 있다.
특히 '떠돌이 이주민 어머니' 는 FSA 사진의 대표작이 되었으며 1930년대 미국 기록사진에서 최고수준의 고전중 하나로 그 가치가 가늠되고 있다.
박홍수기자
그녀의 또 다른 사진들
| NIKON | E995 | Reserved | matrix | Auto W/B | 0.250 s (10/40) (1/4) |
| F/8.6 | 0.00 (0/10) | 11.90(119/10) | ISO-100 | Flash-No | 0000:00:00 00:00:00 |
여인
외바퀴 수레 옆의 남자
Jobless on Edge of Pea Field
Imperial Valley, California
1937
Migratory Cotton Picker
1940
Riverbank Gas Station
c. 1940
Country Road,
County Clare, Ireland
1954
Japanese American men register prior to their evacuation, on the orders of the Army
CREDIT: Lange, Dorothea, photographer. "San Francisco, Calif., Apr. 1942--Residents, of Japanese Ancestry, Appearing at the Civil Control Station for Registration in Response to the Army's Exclusion Order No. 20--The Evacuees Will Be Housed in War Relocation Authority Centers for the Duration." April, 1942. Prints and Photographs Division, Library of Congress. 
Philipinos cutting lettuce, Salinas, California, 1935
Migrant pea pickers, California, February, 1936.
Toward Los Angeles, California, 19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