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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 Dorothea Lange 1895~1965 미국
‘F64그룹’의 멤버. 샌프란시스코에서 초상사진 스튜디오를 열어 성공하고 있었다. 불황기가 계속되고 집과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빵을 얻기 위해 줄서 있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기가 느낀 것과 똑같은 느낌을 갖게 하기 위하여 이것을 찍지 않을 수가 있는가 하고 생각하였다. 경제학 교수 포올 테일러의 일을 맡아, 그와 함께 여행하면서 경제학자의 일을 사진가가 보충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였다. 켈리포니아주청의 의뢰로 이민노동자의 문제를 기록하였다. FSA의 주 멤버, 여류 사진가. 1935. FSA의 의뢰를 받아, 에반즈와 농촌의 실상을 도큐먼트 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특히, 일거리를 구하여 오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이민 노동자들의 비참한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 맞추어 기록하였다. 서로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하 쪽의 작품이 다른 한 쪽 작품을 서로 보충하고 있다. 파라 로렌츠는 ‘U.S. 카메라 1941년 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계수용소나, 보다 나은 노동조건이나, 이민노동자를 원조하는 상설기관이 생기게 된 것은, 랑이 신문, 잡지, 일요부록에 실은 수천 장의 사진으로, 그리고 스타인백이 두 가지 소설과 하나의 극과 하나의 영화로 이들 비극적인 유랑민들을 위하여 미국의 모든 정치가들보다 더 많이 공헌했기 때문이다.’ 1938. 농업안정국 자료의 기록사진 선집 ‘자유스러운 사람들의 토지’에는 아아치발트 매클리이슈(미국의 시인)가 시적인 형식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당초의 목적은 이 사진들을 주(註)로 쓸 본문을 쓰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것들이 생생한 미국을 기록한 힘과 불굴의 내적 생명이 너무나 컸으므로, 결과는 반대의 것이 되고 말았다.’ *‘흰 천사의 빵의 행렬’ ‘계절 농장 노동자의 가족’.


랑겐하임 형제 Frederick Langenheim 1809~79
그의 형 윌리엄과 함께 토올버트로부터 미국에서의 특허권을 사가지고, 1849년에 그 사용권을 팔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다게레오타입에 밀려 실패하였다.


랜드 Edwin H. Land
1947. 폴라로이드 랜드 카메라(즉석카메라)를 발명함.


러스킨 John Ruskin 1819~1900
베네치아궁전을 촬영한바 있는 그는, 1843년에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사진은 구가 뭐래도 귀중한 발명입니다. 우리가 며칠씩 걸려도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 일을 30초 만에 해내는 것을 보면 앞으로는 사진을 나쁘게 평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1849년에 알프스 마터호른을 스테레오로 촬영하였다. 당시의 여행객들은 이런 풍경을 찍은 스테레오사진을 그림엽서 사듯 사갔다.


레르스키 Helmar Lerski 1871~1956
경제 불황이 전 세계를 휩쓸던 1931년에 직업안정소에서 만난 가난한 서민들을 촬영하여 ‘일상적인 얼굴’이란 사진집을 발표하였다.


레비-로드 Levy-Roth
1914. 베를린에서 미노그라프란 카메라를 만들었는데, 35mm 필름을 사용하여 18mm×24mm 50매 촬영할 수 있는 것이었다. 모양은 라이카와 비슷한데, 라이츠사의 오스카 바르나크가 1925년에 만든 라이카 모델보다 11년 앞선 것이었다.


레비츠키 Sergej L. Lewitzky 1819~98
상크트 페테스부르크에서 명함판 사진을 판매하여 재미를 보았다.


레빗 Helen Levitt 1913~ 미국
미국 뉴욕 출생 여류사진가. 워커 에반스에게서 사진을 배웠다. 1940년에 촬영한 '뉴욕‘은 보도에서 라이카를 걸머지고 아이들이 놀이에 열중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찍은 것이다. 그녀의 작품에는 사람들과 환경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심리의 깊은 이해가 있다. 그녀가 찍기 위해 고른 대상과 우리들이 하나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할렘가의 어린이들의 다큐멘터리를 출발점으로 하여 ‘타임’ ‘뉴욕포스트’ 등에서 활약하였다. People in Street가 주요 테마이다.


레이 Guido Ray 이태리
19세기 말경에는, 단순히 회화를 흉내내는 사진(인상주의 사진술이 너무 어려워)이 크게 유행하였는데, 레이도 회화를 본뜬 풍속사진을 만들었다.


레이 Man Ray 1890~1976
‘Rayograph’란 이색적인 초현실적 사진을 만들었다. 1921. 파리에 정착. 샤아도그라프(카메라를 쓰지 않고, 감광지위에 직접 납작한 물체를 놓고 복사하는 기법)에 관심을 가지고, 입체물과 반투명한 물체로 실험을 시작하여, 추상적인 광선화(Light Picture)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레이요그레프’라 하였다. 1927.경 우연한 기회에 Solarization 기법을 발견하였다.(1862.부터 Sabattier-effect로 알려진 것)


레일란더 Oscar Gustave Reilander 1813~75
영국을 대표하는 회화적 사진가 1853. 사진술을 배워 영국에서 포트리트사진관을 개설하였다. 1857. 최초의 합성사진을 만든 사람. 맨체스터 미술전람회에 출품되어, 아마추어 사진가인 빅토리아 여왕에게 팔렸다. 유랑극단 단원의 협력을 얻어 30매의 원판을 만들고, 이것을 합성인화(Combination print)방식으로 우화적인 ‘인생의 두 갈래 길’이라는 대형 사진(31"×16")을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한사람의 현인이 두 청년을 인생행로로 보내려고 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한 청년은 침착하게 종교, 자선, 근면 등의 덕의 길로 향하고, 다른 한 청년은 미친 것처럼 지도자의 손을 뿌리치고 도박, 술, 방탕 등의 악을 저지른 여러 가지 인물로 상징되어 자살과 발광 죽음으로 끝나는 쾌락의 세계로 뛰어 들어간다. 사진 한가운데는, 정면에 두 그룹 사이에 끼여서 ‘희망’이라는 표장을 단 ‘후회’를 상징한 상이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렌트바이-디리크센 Erna Lendvai-Dirksen 1884~1962
1930. 여러 곳에 살고 있는 전형적인 농부들을 촬영하여 ‘독일국민의 얼굴’이란 사진집을 발간하였다.


렝거-파쯔 Albert Renger-Patzsch 1897~ 독일
1922. 네오-리얼리즘이라불리우는 신즉물주의에 입각한 표현양식을 최초로 채택하여 자연과 인공물의 아름다움을 클로즈업 시리즈로 촬영하였다. 1928.'세계는 아름다워'란 극명하게 디테일을 살린 작품들을 수록한 책을 발간하였다. ‘가장 사실적인 작품이란, 톤의 그러데이션이 하이라이트부터 셰도우에 이르기까지 빈틈없이 재현된 작품이거나, 빠른 동작을 분석 표현한 작품, 형태를 그대로 재현시킨 작품을 말한다.’고 주장하였다.


로니 Willy Ronis 1912~
1952.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선정한 4인의 프랑스사진가(브라싸이, 로베르 두아노, 이지스, 윌리 로니)의 ‘4인의 사진가전’이 열렸다. 로니는 보도사진가로 활약하였는데, 단순한 기록이라기보다 인간에 대한 뜨거운 동정과 친근감이 짙게 깔린 휴먼 인터레스트의 사진을 찍었다. *‘철로의 비극’


로드스타인 Arthur Rothstein 1915~
FSA 멤버로서 농촌 지방을 도큐먼트 하였다. 그 후 ‘루크’지에서 사진 저너리스트로 눈부신 활약을 하였다.


로렌트 August Jacob Lorent 1813~84
독일의 여행가. 1859년대 말경 사진전을 개최하여 호평을 받은바 있다. 1861. 이집트, 알지에, 기타 지역의 여행사진을 모아 사진집을 냈으며, 이어서 시칠리아와 예루살렘의사진집도 간행하였다. 1864년까지 왁스 페이퍼 프로세스를 사용했다고 한다.


로버트슨 James Robertson
1855. 크리미어 전쟁을 기록. 1855.6. 펜턴이 크리미아 전쟁을 찍고 전장을 떠난 뒤, 당시 조폐국의 조각부장이었던 로버트슨은 영국군과 프랑스군의 참호와, 파괴된 러시아군의 요새를 두루 촬영하였고, 러시아군이 철수한 직후인 1855.9.8.~9일에는 폐허가 된 세바스토폴 시가를 촬영함으로써 크리미아 전쟁의 보도를 종결하였다.


로빈슨 Heney Peach Robinson 1830~1901
1858. 5장의 네거티브로 만든 합성사진 ‘임종’(소녀의 죽음을 슬퍼하는 가족들을 묘사한 것). 레일란더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아 회화적 경향이 짙은 작품을 제작 발표하였다. 그는 예술사진을 만들기 위한 ‘사진에 있어서의 회화적 효과’라는 책을 만들었다. 이 책은 판을 거듭하고, 프랑스어와 독일어러 번역되었다. 1893.에는 The Rinked Ring Group 창립에 가담했다. - 로빈슨, 에머슨, 데이비슨, 크라크, H.헤이 카메론, 알프레드 마스켈 등이 런던에서 사진협회와 대항하기 위한 모임을 결성하였는데, 이들은 ‘사진술의 회화적 연구를 순수한 과학적?기술적 연구에서 분리함으로써 명확한 회화적 운동을 확립할 것’ ‘독립한 전람회를 가짐으로써 이 운동을 일반에게 인식시킬 것’ 등의 결의를 하고, 명칭을 ‘살롱’이라 부르기로 결정하였다.


로오란트 Stefan Lorant
뮌헤너 일루스트리르데 지의 편집장으로 최초(1929.)로 시리즈사진을 주간지에 실었다. ⇒Felix H. Man


로오렌스 M.M. Lawrence
1844. 뉴욕에서 활약한 다게레오타이프 사용자였다. 미이드, 거어니, 브라디 등과 ‘내셔널 히스토리컬 포트리트 갤러리’를 개설할 목적으로 미국의 저명인사들을 모조리 촬영하였다.


로올린 Clarence J. Laughlin 1905~
조형주의 사진가. 그의 ‘금간 유리창’은 사물의 實在感보다는 디자인적인 효과를 중시하는 ‘포토-포름’의 일종이다. ⇒Otto Steinert


로저 George Rodger 1908~
1947. 마그남 집단의 창립 맴버. 그의 대표적 작품집 ‘미개한 세계’는,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극동지방에 이르는 영국의 식민지를 두루 돌면서 미개한 원주민의 독특한 생활상을 르포르타주 한 작품으로 구성된 것이다.


로젠버그 Robert Rauschenburg 1925~ 미국
신문 잡지의 광고, 자기가 찍은 사진, 자기가 그린 그림 등을 결합(combine)하여 파퓰러 한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 사진과 회화 사이에 경계선을 긋지 않는 주의이다. 최근 그의 사진 작품만을 모은 사진집이 출판되어 소위 순수사진가로도 뛰어난 재능이 있음을 평가 받고 있다.


로즈 Ben Rose
1930년대에 잡지 ‘하이퍼즈 바자’ ‘부우그’ 등을 중심으로 페션 계열의 일을 한 사진가.


로즈-풀함 Peter Rose-Pulham
1930년대에 런던에서 활약한 아방가르드 사진가. 슈르리얼리즘 영향을 받음.


뢰헤러 Alois Locherer 1815~62
1847년부터 뮤니히에서 칼로타입으로 포트리트를 촬영한 사람. 1950. 바바리아의 거대한 동상이 주물공장에서 뮤니히로 운반되는 과정을 찍은 6매의 사진으로 유명해 졌다.


뢴트겐 Wilhelm Conrad Roentgen 1845~1923
1895. X광선을 발견. 의학과 공학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루돌프 Paul Rudolph
1889. 아나스티그맛트(색수차 보정)를 설계. Carl Zeiss.


루보셰츠 Nahum Luboshez 1869~1952
세인트피터즈버그의 코닥 주재사원. 포트리트로 생계유지. 1910. 러시아인의 생활상(‘러시아의 굶주림’)을 도큐먼트 한 것이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루빈캄 Harry C. Rubincam
19세기 말~20세기 초에 걸쳐, 풍부한 감각으로 작품 활동하면서 국제예술사진전람회 등에 참가한, 소수의 순수파 사진가. 네거티브나 포지티브에 손질을 가하지 않음. 1905. ‘서커스의 기수’는 현대 사진의 이정표가 된 작품 중의 하나이다.


루샤 Edward Ruscha 1937~ 미국
네브래스카 생. 1960.부터 화가 겸 사진가로 출발. 현재까지, ‘34의 주차장’ ‘26의 가솔린 스탠드’ ‘9개의 풀’ 등의 사진집은, 독특한 개성으로 엄밀하게 시각적인 사물을 찍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일상 현실의 아주 다른 단면을 모아서 그것들을 얼핏 보기에는 전혀 다른 다큐멘터리로 재창조한다는 식으로 사진의 힘을 유머러스하게 개척하였다. 이러한 다큐멘터리의 충격적인 재미는, 그의 책 속에 LA의 선세트 거리의 여러 빌딩을 찍어 27피트나 되는 파일(사진을 길게 덧붙여 철한 파일)을 만드는 따위에서 보인다.


루스 Henry R. Luce
시사 잡지인 ‘타임’과 경제 잡지인 ‘포오천’을 발행하고, 1932년에는 사진잡지 ‘라이프’의 창간을 기획한 타임사의 사장. ⇒Life


루우트 Marcus A. Roote
1850년대의 필라델피아의 다게레오타입 사진가인데, 아아처가 발명한 ‘콜로디온 프로세스(특허를 출원하지 않은 최초의 사례)’를 이용하여 직접 양화를 만들어 ‘암브로타입’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급하였다. 1842~6년에는 J.E. 메이욜과 제휴하였고, 후에는 런던의 일류 사진가가 되었다.


루이스 William Lewis 1714~81
사진의 감광재를 발명한 웨찌우드는, 슐쩨의 질산은의 감광성에 관한 연구를 처음으로 영국에 소개한 루이스 박사의 조수인 알렉산더 치숄름에게서 광화학에 관한 기술을 배웠다.


루지어 Michael Rougier
라이프 지에 업적을 남긴 보도사진가.


뤼미에르 형제 Louis Lumiere 1864~1948, Auguste Lumiere 1862~1954
성능이 우수한 활동사진 촬영기를 발명함(그 이전에, 마레가 씨네 카메라를 발명하여 촬영한 것이 1890년이고, 1892년에는 영사기를 발명하기도 하였다).


르 그레 Gustave Le Gray 1820~62
화가겸 사진가. 콜로디온(Collodion-면화약과 에테르의 혼합물을 알코올에 용해시킨, 끈적거리는 투명한 액체)의 사진에의 응용 가능성에 대하여 연구한바 있으나,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1851. 파리에서 ‘소시에테 엘리오그라피’란 단체에 동참, 정부의 사적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각지에 산재하는 사적들을 페이퍼 네거티브 프로세스로 촬영하였다. 1851.12.에 왁스 페이퍼 프로세스(칼로타입의 변형)를 발표하였는데, 칼로타입의 경우 촬영전날에 감광제를 발라야하고 촬영 당일에 현상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왁스 페이퍼는 촬영 10~14일 전에 감광제를 바르면 되었고, 현상도 몇일 뒤에 해도 되기 때문에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는 해양사진을 즐겨 찍었는데, 하늘과 바다를 따로 찍어 합성하여 인화(베야르가 1852년에 창안한 기법)하였다.


르 세크 Henri Le Secq 1818~82
1851. 파리에서 ‘소시에테 엘리오그라피’란 단체에 동참, 정부의 사적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각지에 산재하는 사적들을 페이퍼 네거티브 프로세스로 촬영하였다. 르 세크의 서명과 1852 연도가 들어 있는 11"×14"의 종이 음화 중에는 지금도 아름다운 인화를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르르부우르 Noel-Marie-Paymal Lerebours 1807~73
카메라 기기상. 프랑스에서 초창기에 렌즈를 제작하였으나 성능이 좋지 않았다. 그는 사진가들에게 여행사진을 찍게 하여 이 사진들 중 114점을 동판으로 떠 ‘다게르족의 여행’이란 책자로 발간하였다.


리 Russell Lee 1903~
1935. ‘FSA(미국의 공황기에 뉴딜 정책에 따라 농촌의 생활상을 다큐먼트)’ 팀에 참가한 사진가.


리베르망 Andre Liberman
보오그 지의 아트디렉터. 1943. 25세의 어빙 펜을 보오그의 스텝으로 만들었다.


리부우 Mark Riboud 1923~ 프랑스
리용 출생. 엔지니어에서 자진가로 전향. 1956. 로버트 카파, 까르띠에-브렛송의 권유로 마그넘 집단에 가입. 영화 ‘80일간의 세ㅔ계일주’에 관여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르포르타주가 많은데, 중공ㆍ소련ㆍ콩고ㆍ월맹 등의 사진이 유명하다. 1971.에는 인도ㆍ파키스탄 전쟁, 최근에는 방글라데시의 기아상황을 르포 하였다. 또 어린이나 거리를 지나는 행인을 쫓아가 유머의 결정적 순간을 놓치지 않고 찍는 특기를 지니고 있다.


리이드 Joseph Bancroft Reade 1801~70
웨지우드의 실험을 일보 발전시켰다. 식물 표본이나 레이스를 감광지 위에 놓고 밀착 인화를 만들고, 다시 카메라 옵스큐러로 여러 장 복사한 사진들을 영국학사원에서 밀착 사진 전시. 염화은을 칠한 횐 가죽이나 종이를 몰식자산 용액에 담갔다가 꺼내어, 그 위에 현미경의 상을 고정시켰다. 정착은 하이포를 사용함. 1838.4.沒食子酸의 현상 작용은 알지 못했고, 단지 촉진제로만 알고 있었음. 런던박물관에서는 다음 일곱 사람을 사진술의 아버지로 기록 하고 있다. <니에프스> <다게르> <허어셸> <토올버트> <리이드> <아아쳐> <마독스>


리이스 Jacob August Riis 1849~1914
1870. 덴마크에서 뉴욕으로 이민. 뉴욕 빈민들의 참담한 생활을 개선하고자 한 ‘복지향상주의자’. 1888. 범죄로 만연된 뉴욕 동부의 빈민가에서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의 생활상을 폭로하는 사진 ‘슬럼 지대에 빛을 밝혀’‘빈민의 어린이’ 등 ‘포토캠페인’을 벌려 비버리 힐이 철거되고 새로운 도시계획이 시행되게 한 공을 세웠다. 1892 ‘빈민의 어린이’ 등으로 뉴욕 시민들의 잠든 양심을 깨워 ‘멀베리 밴드 빈민굴’을 철거케 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밤의 사화현실을 찍기 위해서 최초로 마그네슘 플래시를 쓴 사람이기도 하다.


리인 Nina Leen
‘라이프’에서 활약한 보도사진가.


리히트바르크 Alfred Lichtwark 1852~1914
함부르크 미술관장. 1893~1902. 10년간, 사진을 위하여 미술관의 문호를 개방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