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보이는 것 너머에 있다.
안녕하세요, 신수진입니다.
사진의 첫 인상
여러분은 전시장 같은 곳에서 사진 작품을 보면
맨 처음 어떤 질문이 떠오르시는지요.
간혹 지인들과 전시장을 찾게 되면
흔히 “이건 어디서 뭘 찍은 건가요?” 라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사진을 설명하는 것이 제 직업이니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을 거라 기대하시겠지만
처음 본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나 소재에 대해선
대부분 저도 잘 모릅니다.
사진 작품에 보이는 단서만으로
그 해답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제가 드리는 답은 이렇습니다.
“이 사진은 직유가 아니라 은유입니다.”
지금 보시는 것은
루스 베른하르트 (Ruth Bernhard, 1905-2006)의
<천 조각 rag, 1971>입니다.

Rag, 1971
“말리려고 줄에 건 깨끗이 세탁한 헌 옷이 있었다.
나에게 이것은 단순한 헌 옷이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 고난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빛이 그 옷을 비추고 있는 방식에 만족했다.”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
야수파와 입체파 화가 조르주 블라크(George Braque, 1882-1963)는
직접적인 묘사의 세계를 뛰어넘기 위해
“대상은 잊고 관계만을 생각하자.”라고 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겉모습만으로 대상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연상시키는 또는 그것과 연관되어 있는
정서나 사고를 자극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때론 세상은
보이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진은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들어가는 관문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 곳에는 내 안으로 향하는 복도가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가면,
오래된 기억 속에서 잠자고 있던 감정과 만나기도 하고,
예상치 못했던 사물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이십 세기 근대 사진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의 사진가이자 이론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1864-1946)는
“等價(이퀴벌런트 equivalent)”라는 개념으로
모든 해답은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고 주장했는대요.
사진에 찍혀진 대상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보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끄집어 올렸을 때
의미를 발생시키는 것이므로,
사진 속의 대상은 보는 사람의 마음과 등가를 이룰 때
비로소 가치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Equivalent, 1923

Equivalent,1930

Equivalent, 1925

Equivalent, 1926

Equivalent, 1929

Equivalent, 1926
스티글리츠가 말년에 작업했던 「이퀴벌런트」시리즈는
인간의 힘으로는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구름을 소재로 해서,
자신의 사상이나 열망, 평안, 공포와 같은 정서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구름에서 바다나 새의 깃털을 볼 수도 있고
한 걸음 더 들어가 스스로 과거에 경험한 도전이나 좌절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전인성의 회복
이러한 시각적 은유의 세계를 개척한 역사적 인물 중에
마이너 화이트(Minor White, 1908-1976)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하늘 땅 나무 길, 심지어는 사람까지도
매우 정신적인 세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작가 자신이 신비주의자였던 이유도 있겠지만,
그의 사진에는 현실 너머를 관조하는 깊이 있는 시각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는 이미 보고 알고 있는 세상 밖으로 나아가서
미지의 새로운 리얼리티를 찾고자 하였습니다.

Barn and Clouds, in the Vicinity of Naples and Dansville, New York, 1955

Road and Poplar Trees, in the Vicinity of Naples and Dansville, New York, 1955

Rochester, 1954

Snow on Garage Door, Rochester, New York, 1960

Two Barns and Shadow, in the Vicinity of Naples and Dansville, New York, 1955

Wall, Santa Fe, New Mexico, 1966

Capitol Reef, Utah, 1962

Windowsill Daydreaming, 1958
그에게 있어서 사진은
치우쳐진 이성을 바로잡고
전인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수련의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이너 화이트는 적외선 필름으로 촬영해서 실제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빛을 담기도 하였고,
빛과 어두움의 대비만으로 조화로운 세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바다는 그 여자다
최근에 여러분들과 같이 제 강좌를 들으시는
한 분의 사진전을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전시와 함께 만들어진 책의 첫머리에는
“바다는 내 삶에 그리움을 가르쳐준 그 여자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윤현수, Lieder Ohne Worte, 2009
그의 작품에서 일관된 소재로 등장한 밤바다에 드리운 달빛은
늘 마음에 품은 그 여자와 같은 존재로 대응됩니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 담긴 그리움은
만남의 기쁨과 환희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좌절과 외로움의 쓴 맛을 느끼게도 해줍니다.
우리는 정해진 답이 없는 감성적 상상력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 너머에
나를 자극하고
나의 숨겨진 가능성을 깨우칠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 순간
새로운 경험이 시작됩니다.
오늘은 직유가 아닌 은유의 세상에서
창의적인 통찰을 얻는 여러분이 되어보시는 건 어떨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심리학자 신수진의 글
안녕하세요, 신수진입니다.
사진의 첫 인상
여러분은 전시장 같은 곳에서 사진 작품을 보면
맨 처음 어떤 질문이 떠오르시는지요.
간혹 지인들과 전시장을 찾게 되면
흔히 “이건 어디서 뭘 찍은 건가요?” 라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사진을 설명하는 것이 제 직업이니
모든 해답을 가지고 있을 거라 기대하시겠지만
처음 본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나 소재에 대해선
대부분 저도 잘 모릅니다.
사진 작품에 보이는 단서만으로
그 해답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제가 드리는 답은 이렇습니다.
“이 사진은 직유가 아니라 은유입니다.”
지금 보시는 것은
루스 베른하르트 (Ruth Bernhard, 1905-2006)의
<천 조각 rag, 1971>입니다.

Rag, 1971
“말리려고 줄에 건 깨끗이 세탁한 헌 옷이 있었다.
나에게 이것은 단순한 헌 옷이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 고난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빛이 그 옷을 비추고 있는 방식에 만족했다.”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
야수파와 입체파 화가 조르주 블라크(George Braque, 1882-1963)는
직접적인 묘사의 세계를 뛰어넘기 위해
“대상은 잊고 관계만을 생각하자.”라고 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겉모습만으로 대상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연상시키는 또는 그것과 연관되어 있는
정서나 사고를 자극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때론 세상은
보이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진은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들어가는 관문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 문을 열고 들어서면
그 곳에는 내 안으로 향하는 복도가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가면,
오래된 기억 속에서 잠자고 있던 감정과 만나기도 하고,
예상치 못했던 사물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이십 세기 근대 사진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의 사진가이자 이론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1864-1946)는
“等價(이퀴벌런트 equivalent)”라는 개념으로
모든 해답은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고 주장했는대요.
사진에 찍혀진 대상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보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끄집어 올렸을 때
의미를 발생시키는 것이므로,
사진 속의 대상은 보는 사람의 마음과 등가를 이룰 때
비로소 가치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Equivalent, 1923

Equivalent,1930

Equivalent, 1925

Equivalent, 1926

Equivalent, 1929

Equivalent, 1926
스티글리츠가 말년에 작업했던 「이퀴벌런트」시리즈는
인간의 힘으로는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구름을 소재로 해서,
자신의 사상이나 열망, 평안, 공포와 같은 정서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구름에서 바다나 새의 깃털을 볼 수도 있고
한 걸음 더 들어가 스스로 과거에 경험한 도전이나 좌절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전인성의 회복
이러한 시각적 은유의 세계를 개척한 역사적 인물 중에
마이너 화이트(Minor White, 1908-1976)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의 사진에 등장하는 하늘 땅 나무 길, 심지어는 사람까지도
매우 정신적인 세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작가 자신이 신비주의자였던 이유도 있겠지만,
그의 사진에는 현실 너머를 관조하는 깊이 있는 시각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는 이미 보고 알고 있는 세상 밖으로 나아가서
미지의 새로운 리얼리티를 찾고자 하였습니다.

Barn and Clouds, in the Vicinity of Naples and Dansville, New York, 1955

Road and Poplar Trees, in the Vicinity of Naples and Dansville, New York, 1955

Rochester, 1954

Snow on Garage Door, Rochester, New York, 1960

Two Barns and Shadow, in the Vicinity of Naples and Dansville, New York, 1955

Wall, Santa Fe, New Mexico, 1966

Capitol Reef, Utah, 1962

Windowsill Daydreaming, 1958
그에게 있어서 사진은
치우쳐진 이성을 바로잡고
전인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수련의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이너 화이트는 적외선 필름으로 촬영해서 실제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빛을 담기도 하였고,
빛과 어두움의 대비만으로 조화로운 세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바다는 그 여자다
최근에 여러분들과 같이 제 강좌를 들으시는
한 분의 사진전을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전시와 함께 만들어진 책의 첫머리에는
“바다는 내 삶에 그리움을 가르쳐준 그 여자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윤현수, Lieder Ohne Worte, 2009
그의 작품에서 일관된 소재로 등장한 밤바다에 드리운 달빛은
늘 마음에 품은 그 여자와 같은 존재로 대응됩니다.
그래서
그의 사진에 담긴 그리움은
만남의 기쁨과 환희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좌절과 외로움의 쓴 맛을 느끼게도 해줍니다.
우리는 정해진 답이 없는 감성적 상상력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보이는 것 너머에
나를 자극하고
나의 숨겨진 가능성을 깨우칠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 순간
새로운 경험이 시작됩니다.
오늘은 직유가 아닌 은유의 세상에서
창의적인 통찰을 얻는 여러분이 되어보시는 건 어떨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심리학자 신수진의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