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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제조원:카메라모델:플래시:초점거리:조리개변경:노출방식:노출모드:노출시간:노출보정:W/B:ISO:촬영일자: 2017:01:05 12:15:52

 

 

1973년 5월 경주 대릉원 미추왕릉 지구 정비사업을 위해 배수로를 파다가 우연히 발견된 6세기께의 계림로 14호 고분에서

피장자의 허리춤 옆에 있던 "황금보검" 이 수습되었는데 그 특이함과 화려함이 이국적이었다.

 

동서 3.5m, 남북 1.3m에 불과한 봉분도 다 깎인 외관이었지만,

지하 돌무지덧널 묘실 속에서 세개의 태극형 무늬가 보석으로 장식된 페르시아풍의 18㎝짜리 장식 보검과

숱한 귀금속 말갖춤, 장신구 등 보물 200여점이 쏟아졌다.

 

1500여년 전 묻힌 무덤 주인은 누굴까.

국내 유일한 서역인 무덤일 것이라고 입에 오르내렸던 이 유적에 대해 약 40년 만에

‘14호분의 주인은 서역 보물에 관심많은 신라 진골 계통의 귀족 무사였다" 라고 국립경주박물관에서 결론을 내렸다. 

장식보검의 칼집 아래쪽에 남아 있던 직물 조각을 정밀 분석해 보니

 

당시 신라 진골 귀족층만 입을 수 있던 고급 비단 ‘능’의 조각으로 확인됐다는 것과

장식보검을 제외한 말갖춤, 귀고리, 화살통 등의 다른 발굴품들은 모두 수입품이 아닌 신라산이었다는 것이다.

무덤 형식 또한 신라의 전통적인 돌무지덧널무덤에다, 머리를 동쪽으로 둔 매장법도 신라인 주인설을 뒷받침한다는 설명이었다.

 

보검의 칼집에 붙은 황금판 장식 보석은 기존에 알려진 마노가 아닌 석류석으로 판명됐고 칼집 안의 쇠칼도 확인됐다.

석류석은 인도, 스리랑카가 원산이며 고대 이런 장식기법은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일대에 널리 퍼져 있었다.

거의 비슷한 모양새의 보검이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보로보예 무덤과 중국 신장 키질 천불동 69호 석굴 벽화에 그려져 있고,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벽화의 고대 한반도 사절 벽화에도 이런 모양의 단검 찬 이가 묘사돼 흑해~중앙아시아 연안이 제작지임은 분명해졌다.

그런데 이무덤의 주인공은 귀고리등 부장품과 치아등으로 확인한 결과 두남자를 나란히 묻은것으로 밝혀졌다.

키 150cm~160cm의 어른 귀족이란 추정이다.

 

순장 혹은 부부가 아니라면 왜 두 어른 남자를 나란히 묻었을까.

생전 친구였다가 함께 전사했을까. 의문이다.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