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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사진(Documentary Photography)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프랑스 사진가 으젠 앗제(Jean Eugène Auguste Atget, 1857~1927, 현대사진의 아버지)는 자신의 사진을 화가들에게 판매할 때 "예술가를 위한 다큐멘트"라고 썼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루이스 하인(Lewis Hine)이 세기말 슬럼가 주민을 찍은 사진과 에반스(Walker Evans)와 랭(Dorothea Lange)이 정부 지원으로 제작한 1920년대 공황기의 빈민을 찍은 초상사진으로 대표된다.
영화에서 다큐멘터리는 1926년 2월 8일 The New York Sun 誌에 영국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의 기고문에서 처음 등장한다. 다큐멘터리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버트 플래허티의 작품 <모아나(Moana)>를 비평하면서 사용한다.“가르치다’는 라틴어 도세르(Docere)에서 기원한 ‘다큐멘터리’는 1800년대 이후 옥스퍼드 사전에서는 ‘가르침’, ‘설득’, ‘경고’로 기술한다. 존 그리어스는 다큐멘터리의 목적을 ‘교육’과 ‘계몽’이라고 보았고, 이러한 다큐멘터리의 정의는 그 후 세계 각국의 다큐멘터리에 영향을 미친다.
다큐멘터리는 사실적으로 찍는 사진으로 촬영자가 피사체에 어떠한 개입을 하지 않고, 증명을 극대화한다. 실제 있었던 어느 사건을 꾸미지 않고,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사회의 생활상이나 현실, 사건 등을 충실하게 재현한다. 따라서 허구적 요소를 배제하고 현실에 충실한 태도가 전제된다. 후세에 남겨둘 가치가 있는 기록인 다큐멘터리 사진은 사실의 기록과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보도사진(photo journalism)과 근본은 같지만, 그 전개 양상에 차이가 있다. 보도사진은 신문이나 잡지 등 저널을 통해 어떤 사실이나 현상을 알리는 구체적인 목적과 기능을 강조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사진가의 예술관과 세계관을 표현하는 예술적 표현으로 넓은 영역을 포괄한다.
다큐멘터리의 고전적인 정의는 가공되지 않은 진실을 제공하는 객관적 현실 기록에 중심을 두었다. 미학적 편집이나 허구적인 요소의 삽입 없이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사진의 기록성과 재현성만을 다큐멘터리라 말하지 않는다. 1990년대부터 창조성과 형식의 다양성을 지향하는 다큐멘터리는 더는 현실을 투명하게 담아내는 창(window)이 아니다. 현실의 표피적인 현상 그 자체를 재현하거나 이야기하지 않고, 작가의 상상력과 창조적인 사고(개인적 주관)를 바탕으로 독특한 미학적 선택이 빚어낸 주관 진실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사진이론과 실천 진영 모두가 공유하는 정의다. 페이크 다큐(fake documentary)는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빌려, 허구의 상황을 실제 상황처럼 가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연출된 상황을 마치 실제 현실과 상황인 것처럼 보이도록 극적 긴강감을 높이기 위해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이용한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함께 현실을 바탕으로 한 창조적 이미지를 생산하여 또 다른 현실을 구성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미적 주관과 세계관을 드러내게 되었다. 특히, 매체예술인 사진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도구가 구조적으로 변화하면 사진 매체의 개념도 변화하는 것이 사진의 숙명이다. 그에 따라 사진 미학과 철학도 새롭게 변화한다. 현실을 모방한 복제품(Simulacrum)의 구분이 모호하고, 난해하게 된 동시대의 문화적인 현상을 가장 잘 반영하는 표현 매체인 사진은 기존 사진 미학도 철학도 변화 시켜 늘 새롭게 변화해 간다. 이러한 변화는 사진가에게 인문사회학적 소양과 철학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되었다.
다큐멘터리 사진은 진실과 허구 사이의 불확실성을 오가며 그 자체로 힘을 발휘한다. 절대적인 진실도 허구도 존재하지 않는 것은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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