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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출사지(서울야경)

 

◯ 장소 : 산성 남문주차장 14:30~(인증샷)

◯ 단풍촬영일정 :  2013.11.9 14:30~16:30

◯ 서울야경일정 : 국청사입구→서문→촬영포인트 17:00~17:30

                         야경촬영 17:30~18:30

◯ 저녁식사 19:00~20:00

 

남한산성(南漢山城)

 

역사

위치는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산 1 (둘레8km,면적16만평)

북한산성과 더불어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중의 하나로, 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의 옛터를 활용하여 1624년(인조2)에 축성하였다.

남한지에 따르면, 원래 심기원이 축성을 맡았으나 그의 부친상으로 인하여 이서가 총융사가 되어 공사를 시작하여, 1626년 7월에 끝마쳤다. 공사의 부역은 주로 승려가 맡아 하였다. 성가퀴는 1,700첩이고, 4문과 8암문)이 있으며 성안에는 관아와 창고 등, 국가의 유사시에 대비하여 모든 시설을 갖추었고, 7개의 절까지 세웠다. 다만 성의 둘레가 6,297보, 성가퀴는 1,897보라고 하는 등 문헌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러한 시설은 기본적인 것에 불과하였고, 인조 때부터 순조 때에 이르기까지 성내의 시설 확장은 계속되었다. 임금이 거처할 행궁은 상궐 73간 반, 하궐 154간이었다. 재덕당은 1688년(숙종l4)에 세웠고, 1711년에는 종묘를 모실 좌전을 세웠다. 그리고 사직단을 옮길 우실도 세웠다. 1624년에 건립된 객관은 1829년(순조29)에 수리되었다.

수어사 이시백이 축성 뒤에 처음으로 유사시에 대비할 기동훈련의 실시를 건의하여, 1636년(인조 14)에 1만 2,700명을 동원하여 훈련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그 해 12월에 막상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여러 가지 여건으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45일만에 성문을 열어 화의하고 말았다. 결국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쌓은 성이었으나 제구실을 하지 못한 뼈아픈 역사)였다. 남한산성은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의 성터였다고도 한다.

 

표상

역사적, 자연적, 문화적인 매력을 간직한 도립공원이다

주봉인 청량산(497.9m)을 중심으로 하여 북쪽으로 연주봉(467.6m), 동쪽으로 망월봉(502m)과 벌봉(515m), 남쪽으로 몇 개의 봉우리를 연결하여 쌓았다. 성벽의 외부는 급경사를 이루는데 비해 성 내부는 경사가 완만하고 평균고도 350m 내외의 넓은 구릉성 분지를 이루고 있다.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천혜의 전략적 요충지이다.